BLOG main image
Google
전체 (24)
추억(追憶) (10)
방랑벽(放浪癖) (9)
얼리 어답터 (5)
학구(學究) (0)
EeePC 1000H vs WIND U100+
칫솔_초이의 IT 휴게실
«   2010/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62744 Visitors up to today!
Today 27 hit, Yesterday 62 hit
'철도'에 해당되는 글 2건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이기도 하지만, 각 지역별 게이트웨이에 해당되는 터미널이나 역 주변엔 온통 구걸하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진을 치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구걸 공화국이기도 하다. 나이도 젊고 사지 멀쩡한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돈벌 생각은 안하고 물품 강매를 하는가 하면, 멀쩡하게 집도 있고 차도 있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노른자위 구걸 아지트로 "출근"해서 자식들 학비와 생활비를 버는 하루 일과를 마치는 사례도 지면을 통해 접했던 적이 있다.

   10년전인 1990년대 중후반의 사례를 보면, 서울 반포에 있는 고속터미널 경부선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표를 끊고 승차장에 나가 있노라면, 양팔이 모두 없는 상태로 목에 팻말과 구걸용 모금함(?)을 걸고 와서는 정중하게 예를 갖춘 후에 도움의 손길을 부탁하는 아저씨가 한 사람 있었다. 역설적이지만, 도와주는 사람이 불쾌해 하면서 마지 못해 꺼지라는 식으로 던져주는 돈은 도움을 바라는 사람이나 도움을 주려는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데, 적어도 이 사람은 매주 봤지만 불쾌하지는 않았었다.

   1999년에 오너 드라이버가 되면서부터 고속버스 이용이 뜸해졌다가 다시 뚜벅이족으로 돌아간 지금은, 고속터미널은 그대로 있지만 그때 그 아저씨는 어찌된 일인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현역'에서 은퇴했거나 다른 곳으로 '이직'했을 거라는 짐작을 해본다.

   반면에 요즘은 어떨까?

   며칠 전 주말에 같이 공부하던 선배가 타고 다니던 차를 바꾸면서 2대를 한꺼번에 집까지 끌고 내려가야 할 일이 생겨 비가 오는 와중에 차를 같이 몰아서 갖다주고는 역에서 서울행 KTX 표를 끊고 밖에서 잠시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온다.

   요즘은 세상이 하도 단순무식해서 열받는 일 있다고 기차에서 자고 있던 사람을 난도질 해서 죽이거나, 이유없이 재미로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불특정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푹푹 찔러대고, 맛깔나게 담궈가지고(?) 요단강 건너 북망산천으로 공짜 티켓 끊어서 보내주는 세상이기에 본능적으로 온몸의 촉수를 곤두세우며 경계태세를 취했다.

   그 이후, 그 사람이 다가와서 하는 행동과 말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한대 칠 뻔한 상황이 벌어진다.

   "장애인인데 껌 하나만 사주실래요 하나에 천원입니다."

   약 2초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그 인간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면서 몇 가지를 파악했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장애인증이 가짜임과 왼손에 들고 있는 후라보X 껌의 가격은 500원이라는 사실. 장애인증이 가짜라는 것은, 너무 인쇄상태가 조악했고 내가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 그런 형태의 장애인증은 본 적도 없고 만들어진다는 소리도 못들어봤고, 앞으로 만들어 지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가짜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사지가 멀쩡했기 때문이다. 다리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짝다리를 짚고 다리를 떨면서 구걸하지는 않을것이요, 손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양손에 장애인증과 껌을 다 들고 있을 수는 없다. 열 손가락의 각 마디 또한 정상이었다. 그리고, 조선말을 온게임넷 스타리그 해설자 뺨치는 속도로 매끄럽게 뱉어내는 인간이 장애가 있을리 만무했다.

   무엇보다 불쾌했던 것은 그렇게 사지 멀쩡하고 30대로 보이는 젊은 사람이 무려 2배나 남겨먹는 엉터리 장사를 하면서, 이 땅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제약이 많은 환경이지만 열심히 사시는 대다수의 선량한 장애우들을 욕보인다는 점이다. 장애가 있는 것과 생전 첨보는 껌파라의 500원짜리 껌을 천원에 사줘야 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결국 나는 손사래를 치며 껌 구매 거부의사를 밝혔고, 껌파라는 이어 1분 동안 예닐곱 명의 행인들에게 똑같은 멘트를 분당 한글 350자의 속도로 쏟아부으면서 강매를 시도했으나 아무도 껌을 사주지 않자, 짝다리를 짚은 채로 팔려고 가져온 것인지 팔다 남은 것인지 알 수 없는 껌들을 정리하면서, 바닥에 침을 찍찍 뱉어내는 쌍스러운 행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거 참 오늘 장사 되게 안되네'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만감이 교차하고 분기가 탱천(?)하려는 걸 억지로 참아내려는 찰나, 무지하게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저쪽에서 꾀죄죄한 몰골과 남루한 행색을 동시에 갖춘, 가히 노숙자 업계의 프론티어라고 할 수 있는 할아버지가 절뚝거리며 어설픈 걸음걸이로 다가오더니, 껌파라 앞에서 멈추곤 엄청나게 불쌍한 표정으로 이렇게 얘기한다.

   "저.. 저기.. 동전 있으면 500원짜리 하나만.."

   '할배 나이스 샷!' 이라는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나는 껌파라가 분명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법으로 맞대응하지 않을까 했는데, 내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두 눈을 부릅뜨다 못해 치켜뜨고, 노숙자 할아버지를 쏘아보면서 껌파라는 이렇게 말했다.

   "죄송한데요 껌 하나만 사주실래요 하나에 천원입니다."

   정말 재미있는 상황이 아닌가? 영화 넘버 쓰리에 나오는 음유시인적인 표현을 빌자면, "개가 소한테 껌을 강매하고 소가 개한테 삥을 뜯는" 정말 아이러니컬한 상황인 셈이다.

   철도공안 당국은 각성해야한다. 쓸데없이 근무복 입고 대합실 안에 서서 목에 힘주고 서 있는 시간을 좀 줄이고, 역 주변의 이런 유해한 환경요소들을 제거하는 데에도 앞장서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말하자면, 역이 발전하고 승객수가 많아지려면 대합실과 편의시설이라는 소프트웨어도 중요하지만 역사(驛舍)와 그 주변에 널부러져 있는 하드웨어적인 측면의 인프라 또한 중요하다는 얘기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7/07/15 10:55 2007/07/15 10:55
Trackback Address :: http://www.laysys.com/trackback/24
[로그인][오픈아이디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지막 하루를 남겨둔 3월 달력을 뒤로 한 채 집을 나섰다.

   근 몇달간 매양일색 KTX 였던 휴가길 행로를 바꿔보고 싶은 욕망이 불끈 샘솟는다. 대구시내는 여타의 중남부지방 도시와 마찬가지로, 저 멀리 서해바다 건너 사막에서 날아온 뽀얀 흙먼지로 온통 뒤덮여 있었고,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의 수 또한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대구에서 경기도 안산까지 300여 킬로미터를 가야하는데 반해,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19시 30분쯤 나선 내 발걸음은 까닭을 알 수 없이 가볍기만 하다.

   황사를 조금이라도 피해보고자 아파트 통로 입구에서 5분 전에 미리 불러둔 콜택시에 올라타고 북부정류장으로 향한다. 북부정류장에 도착했을 때엔,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 경상북도의 경계선을 넘어 충북이나 경기도로 넘어가는 장거리 시외버스는 이미 19시 30분에 막차가 모두 떠나버린 상태다. 20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출발하는 구미행 시외버스에 무작정 몸뚱아리를 실었다.

   범인(凡人)들은 적잖이 당황할 만한 이런 상황 - 직행할 수 있는 막차가 끊어져 버린 시츄에이숀(?) - 을 역마살에 방랑벽까지 겹쳐버린 나 같은 사람들은 즐기게 마련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분명 돌고 돌아서 내가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 필시 있을 것이라는 쓸데없는 신념과 여지껏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전례가 모종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남구미 나들목에서 구미시내로 진입한 시외버스는 순천향대학병원이 있는 낯익은 구미공단 정류소를 지나 종합시외버스터미널에 당도했고, 구미에서도 역시 대구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장거리 시외버스는 포항이나 부산에서 출발해 구미를 들러 오산, 수원이나 인천 등지로 가는 심야버스 몇을 제외하고는 자취를 감춘 상태다. 터미널의 시각표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인천공항으로 가는 공항버스가 있을 거라는 것도 짐작해본다.

   5년 전쯤에 늘상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는 반대로 터미널 앞 택시정류장 건너편에서 택시를 잡아고는 "역전이요"를 외친다. "기차 타시게요?" 라는 기사아저씨의 반문이 메아리처럼 되돌아온다.

   약 0.5초 동안의 시간에 내 머리를 스친 생각은, "네"라는 대답을 하면 "어디까지 가시는데요?"라고 물어본 연후에 지근거리를 가는 손님이면 늦은 시각과 열차의 긴 배차간격을 핑계삼아 자기 차를 타고 가라고 꼬드길 택시기사의 다음 행동에 대한 예측이었다.

   예측가능한 선문답을 피하기 위해 지레짐작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아뇨, 누구 만나러 가는데요." 라는 대답을 돌려줬더니 "아, 그래요. 요즘은 기차 타는 손님들은 뒷쪽에 내려드리거든요. 그래서 물어보는거에요."라는 예상 밖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택시비를 지불하고 역전에 내려선 뒤에야 현문우답(?)에 대한 연유를 간파할 수 있었는데, 민자역사로 멋지게 탈바꿈한 구미역의 모습을 보고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단층짜리 작은 건물에 역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작은 다리 하나만이 우두커니 역을 가로질러 서 있던 과거 역사의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사뭇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제트기의 애프터 버너(AfterBurner)에서 재연소된 화염이 분출되는 사구의 그것처럼 아가리를 떡하니 벌리고 있는 계단 끄트머리의 입구부터 시작해서, 던킨도넛 매장 진열대 위의 잘 정돈된 빵처럼 정형화된 박스형 공간에 들어서 있는 내부의 음식점들까지 하나하나가 눈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기왕지사 늦어버린 집에 가는 길을 더욱 즐겁게(!) 가기 위해 자동발매기에서 무궁화-KTX 환승표를 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전역에 도착해 약 20분간을 쉬어가는 여정이다. 21시 26분에 구미역을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는 23시 05분에 대전역에 도착했고, 때마침 강릉에서 출발해 종착역인 대전으로 들어오는 전기기관차와 객차 4량이 한쌍으로 어우러진 열차행렬이 목전에 들어온다.

   디젤기관차 특유의 굉음과는 달리, 조용히 이음새 사이를 지나가는 철제 휠의 뚝딱거리는 소리만이 선명하게 청각신경을 자극하는 듯 했다.
   
   플랫폼에 멈춰선 전기기관차는 지붕위의 전차선에 붙어 있던 팬터그래프(Pantograph) - 트롤리 폴(Trolley Pole), 뷔겔(Bügel) 등과 같이 고정부분과 유동부분의 사이에서 전력을 전달해주는 집전장치(集電裝置)의 한 종류 - 를 내리면서 강릉부터 참아온 긴 숨을 몰아쉰다.

   검수원들이 차륜과 각종 기계장치들을 망치로 두들겨가며 육안으로 살펴보는 동안 객차 내부에서는 몇 명의 사람들이 부지런히 좌석 머리받침에 걸쳐 있던 종이재질의 커버를 벗겨내고 있었고,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디카를 꺼내 기관차의 측면부를 촬영했다. 잘못된 일은 없지만, 왠지 기관차의 휴식에 방해될 것 같은 조심스러움이 한층 더해진 탓이다.

   일찍이 전철화된 중앙선의 일부라거나, 태백선이나 영동선 철도와는 달리 경부선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대전역에서 이렇듯 전기기관차를 볼 수 있는 것은 그리 얼마 되지 않은 일로, KTX가 다니게 되면서부터이기에 더욱 새롭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우두커니 서 있는 육중한 전기기관차를 바라보면서, 쉴새없이 달려온 녀석의 지금처럼 나도 쉬고 싶다는 생각에 잠긴다.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번 꼴로 떠나는 짧은 여행이 계속되고 있지만, 시나브로 많은 것들이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

   그렇지만, 이 여로에서 내가 얻는 감흥과 카타르시스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의 범주에 속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역마살과 방랑벽에서 기인하는 적과의 동침같은 나홀로 여행을 도저히 끊을 수가 없나보다.

   3박 4일간의 짧은 휴가에서 돌아온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내 머릿속은 벌써부터 관광교통 시각표 책자속의 타임테이블을 이리저리 조합하며 다음 여로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7/04/05 22:04 2007/04/05 22:04
Trackback Address :: http://www.laysys.com/trackback/17
[로그인][오픈아이디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 PREV #1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