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 유일무이(有一無二...
스물세 살이나 더 먹어버린...
만화책과 이용소(理容所)
ASUS EEEPC 901 과 MSI WIND... (3)
몇 년 만에 찾은 오이도 포구
다시 찾은 서울, 한강둔치
소회(所懷)
KT 메가TV 체험기
제주 여행기 #2 - 백업(Back...
제주 여행기 #1 - Prologue
![]() | ![]() | ![]() |
1인 1휴대폰 시대로 일컬어지는 현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 나를 포함하여 - 우리나라에도 분명 이동통신의 암흑기 내지는 과도기적인 단계가 존재했는데, 세일즈맨이나 긴급한 연락메세지를 신속하게 수신하고 그에 응신해야 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무선호출기 - 일명 삐삐 - 라 불리우는 기기를 허리에 차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지하에서는 잘 터지지 않는데다가 삐삐를 가진 사람들끼리 연락하려면 음성메세지를 녹음하고 그것을 청취하기 위해서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휴대폰의 보급으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 지금의 공중전화와는 사뭇 다른 모습인 셈이다.
지역삐삐의 경우 필자는 광역삐삐가 생산 및 시판되기 이전에는 대구/경북권 사업자인 세림이동통신의 015 서비스를 사용하다가 1994년 7월경 텔슨전자의 최초 광역무선호출기인 왑스(WAPS)가 출시되면서 SK-Telecom의 012로 옮겨탄 전력을 가지고 있다. 이때 개통했던 왑스는 012-211-1715 라는 다소 생소한(?) 번호로 이후 약 3년간 뒤에 언급된 신세기통신의 017 셀룰러 폰을 구매하기 이전까지 외출시 꼭 챙겨야 할 필수품 제1호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광역무선호출기 또한 맹점이 있었으니 지역을 이동하게 되면 해당 지역으로 무선호출기의 서비스 지역 선택내역을 맞추어 주고, 전화를 통해 서비스권역을 등록해 주어야만 제대로 수신이 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어, 대구에서 서울로 기차를 타고 이동한다고 가정하면 대구에서 왜관, 김천을 지나 영동역으로 들어갈 무렵에 충북권역으로 1회, 다시 영동에서 대전으로 들어갈 무렵 충남권역으로 1회, 대전에서 조치원, 천안을 거쳐 오산으로 들어갈 무렵 서울/수도권으로 1회 등 무려 3회의 서비스 권역 설정을 맞추어야 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기차 안에 타고 있으면서 전화를 걸어서 이동통신 서비스 권역을 변경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고, 그렇다고 서비스 지역이 변경되는 역에 열차가 정차할 때마다 플랫폼에 뛰어내려가서 짧게는 30초 길게는 1분인 정차시간내에 공중전화를 걸어 서비스지역을 바꾸고 다시 열차에 탄다는 것 또한 환장할 노릇이다. -_-b
그래서, 부득이하게 대구에서 서울을 갈 때는 김천 인근 추풍령 정도까지는 대구/경북권 서비스를 받아서 제대로 호출기가 터지고 황간을 지나 영동으로 진입할 무렵부터 서울에 도착해 전화를 걸기 전까지는 광역호출기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먹통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또는 머리가 좀 돌아가는 人이라면, 아예 대구에서 전화를 걸어 서울/경기로 서비스권역을 미리 변경해두고 열차에 승차하는 방법을 쓰기도 했었다.
이러한 무선호출기의 단방향성을 극복하고자 지금의 셀룰러 폰이나 PCS 이전에 "씨티폰"이라는 기기가 잠시 - 아주 잠깐이었다 - 인기 상한가를 구가하며 등장했던 때가 있었는데, 한국통신(지금의 KT) 공중전화 박스에 씨티폰 전파를 중계하는 장치를 장착하고 박스에서 반경 100미터 이내에 위치한 곳에서는 어디든지 발신이 가능한 그야말로 발신 전용의 획기적인 상품으로 떠올랐다. - 말 그대로 획기적일 뿐이었지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한 것은 아니었다 -
씨티폰은 일종의 젠더 역할을 하는 케이블을 이용하면 노트북에 연결해 마치 집에서 PC통신을 하듯이 하이텔이나 천리안 등의 서비스에 접속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이동성과 휴대성을 겸비한 통신수단이었지만, 전파의 도달거리가 공중전화 박스 인근으로 한정되고 통화자와 공중전화 박스의 중계장비 사이에 대형버스 한 대만 지나가도 통화가 단절되는 극악(?)의 안정성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기도 했던 애물단지같은 존재였다. 더구나 수신이 되지 않는다는 "발신전용"의 낙인은 그 외면의 정도를 더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았다.
실례로, 모 학교 노천극장에서 씨티폰과 구형 노트북을 이용해 하이텔에 접속해서 서비스를 사용하던 중에 공중전화 박스와 나 사이에 차량이 수시로 지나다니자 계속 화면에 노이즈가 끼거나 접속이 단절되는 등의 현상으로 인해 엄청난 짜증을 유발하는 것을 확인했던 적도 있다.
인터넷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1999년 4월 9일자 자료
한국통신의 씨티폰 사업 퇴출에 대한 우리의 입장 먹통 씨티폰, 퇴출이 끝 아니다 / 정책실패·사업실패 책임규명, 소비자피해 보상 있어야
한국통신이 불량 통화품질로 소비자들의 원성을 받아오던 씨티폰 사업을 퇴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중앙일보 4월 8일자 1면). 씨티폰 사업은 그 시작부터 이미 실패가 예정된 사업이었다. 지난 97년 7월 서비스를 시작한 시기는 이미 휴대폰 서비스가 대중화 단계에 있었으며, 개인휴대통신(PCS)이 서비스 공급을 목전에 둔 상태였다. 따라서 기지국반경 100m 이내의 발신전용 이동통신인 씨티폰 사업은 타 통신서비스에 비해 품질은 물론 가격면에서도(초기 시티폰 기본요금 7500원)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밀한 수요예측과 시장전망 없이 사업을 결정함에 따라 수천억원에 달하는 투자손실만 남긴채 사업포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같은 과정은 통신정책의 명백한 실패이다. 씨티폰 사업 퇴출에 앞서 정부는 이같은 정책실패의 원인과 책임을 보다 분명히 가려야 할 것이다.
그간 씨티폰 통화불량으로 인해 많은 소비자들이 기본료등 금전적 피해와 정신적 고통을 당하였다. 그러나, 사업자인 한국통신측은 이같은 소비자들의 피해와 기본료 환불요구를 일관되게 외면해 왔다. 이처럼 소비자 피해에 대해 아무런 보상대책도 없고 현 이용자에 대한 뚜렷한 사후대책도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퇴출을 선언하는 한국통신의 태도는 공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몰각한 비윤리적 처사이며, 통신독점사업자의 부당한 횡포에 다름아닌 것이다.
우리는 한국통신측에 다시한 번 씨티폰 통화불량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기본료반환을 포함한 소비자 피해에 대한 보상대책을 조속히 수립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퇴출에 따른 현 씨티폰 이용자들에 대한 명확한 대책의 수립도 따라야 할 것이다.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는 이후 정보통신부와 국회, 감사원등 제반 관계기관에 질의, 진정, 감사청구등을 통해 씨티폰 사업실패의 책임을 가리고 소비자 피해에 대한 보상을 촉구하는 활동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
1997년, 새로이 등장한 PCS 에 의해 무선호출기 시장이 몰락하며 SK-Telecom 의 012 나 지방권역 무선호출사업자의 015 서비스가 역사속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2001년 SK-Telecom 의 전국망 무선호출사업권을 인수한 리얼텔레콤에서 유일하게 지역단위 및 광역단위 무선호출서비스와 문자수신서비스를 제공중에 있으며, 앞으로도 무선호출 기지국이 남아 있는 한은 서비스가 지속될 전망이다.
2006년 정보통신부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42,000여명의 무선호출 서비스 가입자가 존재하며 이 중 대다수는 증권정보 서비스를 제공받는 이용자들이지만, 1만여명의 "진짜" 삐삐사용자들이 아직 유료로 한 달 8,000원에서 1만원이 조금 넘는 대가를 지불하고 무선호출 서비스를 애용하고 있다. 의사들이나 긴급한 연락을 요하는 직종 종사자에 국한되는 현상이지만 말이다.
2007년 2월 현재 광역 및 지역별 무선호출기 구매와 가입은 디아이티에서 운영하는 사이트 "I love beep" 에서 가능하며, Daum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삐삐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결성되어 변치 않는 무선호출기 사랑을 과시하고 있다.
시도 때도 울려대는 휴대전화를 뒤로 하고 선택한 사람에게 원하는 시간대에 연락을 취할 수 있는 것을 1차 목표로, 삐삐나 휴대폰 같은 개인 휴대형 이동통신 기기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궁극의 경지(?)를 점령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딛어 보는 것도 괜찮은 행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요즘처럼 사무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울려대는 휴대폰이나 MFC 전화기의 벨 소리에 진한 노이로제를 느끼는 시기에는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