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칫솔_초이의 IT 휴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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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C 통신을 처음 접한 1991년 이후 온라인상에서의 다른 PC 또는 사용자들과의 연계성에 골몰하며 지냈을 무렵, 사설 벼락쪽(BBS: Bulletin Board System, 전자게시판)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사용자의 입장에서 케텔(KETEL)이나 PC-Serve와 같은 대형통신망 또는 개인이 운영하던 사설 BBS에 접속해 활동하던 것에서 탈피해 무언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싶은 욕구에서 발현된 것이 아닌가 싶다.

   당시 내가 보유하고 있던 장비는 고작 메인메모리 512KB, CPU 클럭 10MHz 의 초라한 XT PC 뿐이었고, 지금은 흔하디 흔한 필수장치가 된 하드디스크가 없었다. 사설 BBS 를 오픈하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우선, 보조기억장치의 용량 한계를 뛰어넘어 게시판이나 자료실의 데이터를 저장할 하드디스크를 PC 에 장착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삼성전자와 PC 를 샀던 현대전자 등 여러 군데에 견적을 받고 문의를 한 결과 손에 쥐게 된 것은 시게이트社에서 나온 MFM 방식의 62MB 하드디스크였다. 메가당 5천원이라는 비용부담을 떠안고 62MB 하드디스크를 장착한 후에 MS-DOS 를 부팅하면서 반짝거리는 하드디스크의 전면부 패널의 적색 LED 램프가 반짝거리는 것을 보며 흐뭇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하드웨어적으로 준비가 된 다음에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이 바로 호스트 프로그램을 선정하고 셋업해서 정상적으로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었는데, 이는 예상외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와일드 캣(WildCat)이나 RBBS-PC와 같은 외국산 프로그램이나 곰주인, 밀키웨이, 호롱불과 같은 국산 호스트 프로그램들이 이미 대형 PC통신사의 자료실에 많이 공개되어 있었고, 운영자들이 할 일은 메뉴얼을 숙독해 트리구조로 되어 있는 메뉴파일을 작성하고, 각각의 메뉴에 맞는 스크립트(사용자에게 보여질 화면) 파일을 작성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대형 통신망과는 달리 지역의 PC통신인들을 위해서 아기자기하고 지역정보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고심했고, 마침내 1992년 4월 최오길님의 호롱불 호스트 3.82C 버젼을 이용해 History NET 이라는 사설 BBS를 오픈하기에 이르렀다.

   도농복합형 도시로 탈바꿈 하기 이전 순수하게 인구 10만명도 안되는 지방의 중소도시에서 PC 통신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기에 초반에는 회원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면서 입에서 입소문을 타고 가입자는 한 명씩 늘어나기 시작해서, 운영을 개시한 지 약 2개월이 지났을 무렵에는 회원수가 약 50명에 이르렀다.

   시내에 있는 교회의 목사님이나 컴퓨터 가게 사장님, 그리고 같은 학교에 재학중이던 친구, 선후배들을 필두로 점점 접속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인근의 구미에서는 이 무렵 모처의 컴퓨터 가게에서 운영하던 "선주골"이라는 멀티노드 사설 BBS가 운영중이었는데, 유닉스와 유사한 제닉스 OS 기반에 호스트 프로그램을 얹어 최대 4명까지 동시에 사용이 가능했다.

   컴퓨터 가게가 아닌 개인 입장에서 그것도 10대가 거액의 투자비용이 들어가는 멀티 시리얼 카드나 외장형 모뎀, 그리고 전화선 등을 설치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단일노드 환경의 BBS에서 무언가 더 발전시킬 만한 촉매가 없을까 고민하던 차 호롱불 호스트에 있는 네트메일 기능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 이는 지금의 인터넷 메일을 주고 받는 시스템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 싶다.

   호롱불 호스트의 네트메일 시스템은 A 라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중앙국"이 하나 존재하며, - 중앙국은 호롱불의 개발자인 최오길님과 또 다른 한 사람이 운영했고, "알파넷"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 이 중앙국은 각 지역별로 다수의 중계국을 두게 되고, 이 중계국은 또 다시 하위에 다수의 회원국을 가지는 이른바 트리구조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으면서 동일한 호롱불을 호스트로 사용하는 BBS 간에 메일이나 게시물을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운영되는 것이다.

   나는 당시 공석이던 경북지역 중계국 노드로 가입을 신청했고, 중앙국인 알파넷에서 승인이 떨어져 노드리스트 파일과 네트메일에 필요한 몇 가지 부수적인 파일들을 중앙국으로부터 전화접속을 통해 제공받은 뒤 실질적으로 구동이 가능하게끔 약간의 부수적인 설정을 호스트 프로그램에 맞춰주는 작업을 했고, 이후 경북중계국으로 서울의 중앙국인 알파넷에 네트메일을 위한 첫 자동접속을 지켜보던 그 때의 기분은 정말 환희 그 자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설 BBS의 운영은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 비공식적으로 김천에서는 제1호 단일노드 사설 BBS 개국 기록을 남겼고, 집에서 사용하던 KT 의 일반전화를 같이 사용하는 것이었기에 24시간 운영을 하지 못하고 - 당시의 사설 BBS 들 대부분이 야간에 제한적으로 운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 22시부터 06시까지 하루에 8시간씩만 운영했지만, 사용자들 대부분 역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주간에는 접속할 여건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그다지 큰 문제는 없었다.  

   인터넷 기반의 Telnet, Gopher, FTP 같은 서비스나 지금의 웹 포털들이 자리잡기 전까지 수많은 경험을 하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과 서비스들을 접해보았지만, 약 1년간 이어졌던 이 사설 BBS 운영 시절만큼 색다르고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은 이후에 없었던 것 같다.

   아쉬운 게 있다면, 단일노드 환경이라 운영자(SYSOP: System Operator)와 접속한 사용자 단 둘만이 존재하는 - 지금의 멀티태스킹과 멀티유져가 보편화된 시점에서는 엉성하고 어딘가 어색하기 그지없는 - 공간이라 조금은 답답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관심사와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밤새워 토론하고 이야기하던 문화 자체를 즐기던 경향과 더불어 익명성을 배제한 채 서로에 대한 예의를 갖출 줄 알았던 그 시절, 동시대를 살았던 절대 다수 통신인들의 에티켓에 경의를 표하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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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4 23:18 2007/03/04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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