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칫솔_초이의 IT 휴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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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을 에일 듯한 추위가 온몸을 엄습하는 겨울날 새벽, 서울가는 첫 열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에 서 있었던 기억은 비단 나 혼자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를 종단하는 제2의 철도인 경부선이 지나가는 축복받은(?) 땅에서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자랐던 나는 더더욱 그런 기억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서울과 부산 사이의 경부선과 영주로 향하는 경북선이 분기하는 곳, 경북 김천시.

   1948년에 포항, 수원과 함께 시로 승격되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살고 있는 사람의 머릿수를 헤아려 보면 그다지 변화가 없는 전형적인 소비도시이다. 이러한 연유에서 2개의 철도 노선이 서로 교차하는 - 비록 그 중 한 개 노선은 단선이었지만 - 장점을 부각시킬 수 없어 새마을호 열차도 거의 정차하지 않던 곳.

   지금은 폐선되어 '철로자전거'라는 관광아이템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문경 가은읍 일대에서 생산되는 무연탄을 수송하던 산업철도의 연장선상에 아련한 흔적만이 남아 있는 그곳이 바로 나의 유년기 16년을 보낸 곳이었기에, 거대한 동물의 시체같은 서울에서 한 주를 보내고 주말이면 내려가야 하는 곳 또한 다를 바 없었다.

   지금처럼 주 5일제 근무가 정착되지 않은 1990년대 후반, 내가 다녔던 회사 또한 토요일에도 규정된 근무시간을 채워야 했었고 IMF 를 전후하여 어려운 사정 덕분에 토요일도 오후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토요일 저녁시간 즈음에 지친 몸을 이끌고 간단히 짐을 챙겨 집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227.6Km 에 달하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거나, 아니면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영등포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방법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간혹, 대전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서 다시 기차로 환승하는 두 가지가 믹스된 루트를 택해서 가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 내가 선택한 교통수단은 고속버스였다.

   토요일 퇴근시간이 일정치 않아 기차표를 예매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고, 혹 운이 좋아 즉석에서 표를 구한다고 하더라도 피곤에 절은 몸으로 깊은 잠에 빠지면 내려야 할 곳에서 못 내려 지나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노파심에 편안하게 잠을 청할 수 있는 고속버스를 택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것에도 걸림돌이 있었다. 워낙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던 데다가 중소도시였기 때문에 서울과의 사이에 유동인구가 그다지 많지가 않아서 버스의 배차간격이 1시간 30분 정도로 길고, 막차도 18시 20분에 일찍 끊어지는 등 조금만 늦게 일이 끝나도 집에 바로 갈 수 있는 직통노선은 탈 수가 없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택한 방법이 아예 23시경에 출발하는 대구행 심야우등 버스표를 이지티켓에서 인터넷을 통해 예약해 두었다가 - 지금은 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이지티켓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 일이 조금 일찍 끝나면 기다려서 타는 방법으로 동대구 한진터미널에 새벽 3시경에 도착하면 조금 걸어서 동대구역까지 간 다음, 04시 15분에 출발하는 서울행 첫 통일호를 이용해 김천까지 이동하는 것이었는데, 여기에도 문제는 있었다.

   바로 동대구에 조금 일찍 도착하거나 하면 열차 출발시각과 거의 1시간 반에서 2시간 가량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뚜렷한 우리나라의 사계 중 봄, 여름, 가을까지는 별로 지장이 없는데 반해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한겨울에는 고속터미널에서 동대구역까지 걸어가는 일조차 고역이었을 뿐더러 - 4시간 동안을 내리 자다가 일어난 직후에는 - 동대구역에 가서도 마땅히 시간을 보낼 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조금 시간이 많이 남는 날에는 역사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게 되었고, 고속터미널에서 걸어오는 방향의 역사 바깥쪽에 냄비우동과 어묵, 즉석햄버거 등을 팔던 가게가 있어 우연히 한 번 들렀다가 그곳의 냄비우동 맛에 반한 뒤로는 이 냄비우동을 먹기 위해서 일부러 시간 맞춰 심야우등을 타는 볼썽사나운(?) 광경을 연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닳고 닳아서 새까맣게 탄 흔적마저 배어 있는 양은 냄비에 약 1분간 끓여서 집게로 집어 쟁반에 올려주는 냄비우동과 단무지 맛이 가져다 주는 오묘한 조화와 함께 우동면발과 곁들여진 야채 토핑들 사이로 꼭꼭 숨어 있거나 아예 위에 올라타 있는 조그마한 계란 토핑을 찾아내 '터뜨려 먹을지 흰자위만 풀어서 먹고 노른자위는 반숙을 만들어 먹을지' 등을 고민하는 따위가 시간을 보내기엔 아주 그럴싸했다. - 적어도 범인(凡人)들이 하지 않는 행동과 생각을 일삼는 나의 대뇌피질 구조하에서는 말이다 -

   우동을 다 먹고 난 뒤에도 손님이 많지 않으면 훈훈한 온기를 맞으며 따뜻한 곳에서 열차를 기다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 실상은 새벽열차를 타러 오는 승객들 중 아침을 못먹은 사람들이 많기 떄문에 겨울에는 거의 빨리 먹고 비켜줘야 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 신문도 보고 여하지간 앉아서 남은 시간을 떄울 수 있는 좋은 장소를 제공했기 때문에 둘도 없는 아이템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통일호 객차가 사라지고, 무궁화호로 승격되면서 열차 출발시간이 뒤로 조정되어 04:30분에 출발하는 것으로 바뀐 뒤에도 한동안 이 냄비우동을 애용했었지만 1999년에 오너 드라이버가 되면서부터는 내 머리속 기억의 강 저편에 자리잡은 이 훌륭한 아이템은 잊혀지는 듯 했다.

   얼마의 시간이 더 흐르자 민자유치로 지어진 복합역사가 들어서고 각지의 역들이 화려하게 탈바꿈하면서는 레시피 같지 않은 레시피와 포장된 상태의 면발을 앞세운 천편일률적인 '홍익회 플랫폼 우동'의 가공할만한 물량공세 앞에 냄비우동집은 일순간 사라져 버렸고, 옛날 생각이 나서 가게가 있던 곳을 찾았을 때에는 이미 동대구역도 민자유치로 지어진 신역사가 커다란 아가리를 벌린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얼마전 인터넷 검색을 하다 우연찮은 기회에 동대구역 냄비우동에 대한 찬반양론(?) 내지는 갑론을박(?)이 오고가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고, 거기에서 얻을 수 있었던 정보는 '동대구 신역사 안 롯데리아 옆에 냄비우동을 파는 가게가 있다'라는 얘기였는데 '맛있다'와 '그냥 우동이네'라는 두 가지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것을 보고 역시 음식 맛은 다분히 '먹는 자의 주관적인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동대구역에서 추운 겨울날 새벽 냄비우동을 즐겨 먹곤 했었던 것을 추억하며 그리워하는 이유 또한 다름아닌 냄비우동의 '맛있는 맛' 때문이 아니라 양은냄비에 담겨져 나오는 냄비우동을 후후 불어가며 먹던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이니까 말이다.

   아직 동대구역 신역사 내에 존재한다는 냄비우동 가게를 찾아가 보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서울 가는 길이나 내려오는 길에 한 번쯤 꼭 들러서 다시 먹어볼 생각이다. 이상야릇한 옛날 생각을 더듬더듬 머릿속 어느 구석에선가 끄집어 내어 곱씹으면서…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몇 번 동대구역에 가거나 올 일이 있었지만 그냥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양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팽창해버린 역 건물의 화려함 이면에 감춰진 옛날의 그 정서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내가 나이를 먹고 둔감해진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서글퍼진다.

   냄비우동 한 그릇에 60분 남짓한 시간을 투자하며 즐길 수 있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너무 아둥바둥 입에 풀칠하는데 바빠서 내 앞에 주어진 자그마한 행복을 즐길만한 여유조차도 사라져버린 현실에 목놓아 마음으로 통곡해 본다.

   기억의 상실은 결국 기억의 저장과 동시에 진행된다고 보는 것도 무리는 없을 듯 싶다.

   단지, 그 정도에 대한 개인적인 편차만이 존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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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3 21:43 2007/02/13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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