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Google
전체 (24)
추억(追憶) (10)
방랑벽(放浪癖) (9)
얼리 어답터 (5)
학구(學究) (0)
EeePC 1000H vs WIND U100+
칫솔_초이의 IT 휴게실
«   2010/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62741 Visitors up to today!
Today 24 hit, Yesterday 62 hit
'방랑벽(放浪癖)/Story'에 해당되는 글 9건
< PREV #1  | NEXT >
   오이도 해양단지를 다시 찾았을 때는 염천(炎天)의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와중이었다.

   1개월 남짓 시간이 흐르고 나서 다시 찾은 서울은 대구나 별반 다를 바 없는 흉측한 모습을 하고 나를 맞아주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건물마다 외벽 사이의 빈틈을 메우며 속속들이 들어서 있는 에어컨의 실외기들은, 부쩍 늘어난 국지성 집중호우로 말미암아 예보가 부실하다며 생중계나 하라는 등 곤욕을 치르는 기상청의 애환을 짐작게 함과 동시에, 가뜩이나 불볕더위에 지쳐 거리를 지나는 이들의 미간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의(意)로써 맺어진 형제를 만나 좀 늦은 식사를 하고 나니 소주 한 잔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회포를 풀 만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동생이 뜻밖의 제의를 해왔다.

   " 정히 갈 데가 없으면 형님네 동네로 가든가… "

   여의도 환승센터에서 5601번 광역좌석버스에 몸을 싣고 서해안 고속국도 IC가 있는 목감을 지나 지금은 안산동으로 개명된 수암과 안산시내 주요 정류장들을 거친 후 평소보다 약 20분이 지체된 8시 20분쯤에야 시화 신도시 이마트 정류장에 비로소 내릴 수가 있었다. 군것질을 좋아하는 동생이 이끄는 대로 다마스를 개조해 만든 트럭에서 파는 타코야키 - 문어구이? - 한 통과 음료수로 주린 배를 달래고 다시 택시에 몸을 실었다.

   10분 정도 달렸을까… 택시에서 내려 포구로 가는 방파제 위 포장로를 걷는 내내 그리 이르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고온다습한 공기가 폐부 깊숙한 곳을 찔러온다. 후덥지근하지만 그리 탁하지 않아 싫지는 않은 느낌이 서해에서 불어오는 해풍과 함께 온몸으로 흩뿌려진다. 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방편으로 한겨울 설원으로 변해 있는 오이도 포구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았지만, 상상력으로 현실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다.

   몇 년 만에 찾았지만 자주 가던 단골집은 아직 그대로 있었다. 특별히 맛있는 메뉴가 있거나 가격이 싸다거나 하는 등의 장점은 없지만, 마음이 편해서 단골집이 좋다. 마치 오랜 시간이 흘러서 찾아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맞아주는 친구와 동격이라고 할 수 있을까?

   3만 원짜리 조개구이를 하나 시켜서 소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다 보니 어느새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이다. 가게에 들어갈 무렵에는 식사 대용으로 바지락 칼국수까지 시켜서 먹을 요량이었지만, 고작 조개구이 한 사발에 녹아내린 셈이다. 그렇지만, 바다를 바라보며 신선한 조개를 화로에 구워 소주잔을 기울이는 동안엔 더위는 씻은 듯이 사라진 채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 오이도 해양단지 찾아가는 법

 
① 대중교통 이용
     -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경원여객 30-2번 오이도행 시내버스(900원) 환승
     - 명학역, 안양본백화점 경원여객 350번 좌석버스(1,500원) 이용 오이도 해양단지 하차
     - 지하철 7호선 광명역에서 화영운수 1번 시내버스 이용 오이도역에서 30-2번 환승
     - 여의도 환승센터에서 경원여객 5601번, 시흥교통 510번 이용 오이도역에서 30-2번 환승
     - 택시 이용시 요금 약 3,000원(주간)
② 자가용
     - 제2경인고속국도 월곶 IC 에서 빠져나와 3거리 좌회전
     - 좌측에 시화신도시를 끼고 고가차도 너머 직진
     - 오이도 해양단지 이정표 보고 우회전
     - 둑방길 따라 계속 진입후 단지 내 주차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8/08/11 02:22 2008/08/11 02:22
Trackback Address :: http://www.laysys.com/trackback/30
[로그인][오픈아이디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8월 10일 금요일, AM 10:00
   긴 여정의 서막


   학교 수료식이 끝나고 난 후 사진을 찍으며 아쉬운 석별의 정도 나누면서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보지 못할 수도 있는 사람들과 미처 나누지 못한 인사를 한 뒤에 우리 일행은 재빨리 숙소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저녁에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제주항으로 출발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모두가 분주하게 짐을 챙기고 있을 무렵, 나는 전날 챙겨둔 가방과 택배 박스를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충남대 후문에서 3개월간 대전에서 생활했던 3명의 짐을 실어 나를 차를 가지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기 위해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LPG 연료를 쓰는 NF 소나타를 인수받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제동은 그럭저럭 별 문제없이 되는 것 같았지만 액셀레이터를 밟을 때 가속을 하며 들려오는 높은 주파수의 가래 끓는 소리가 신경을 거슬리는 듯 했다. 어차피, 장거리를 오랜 시간 동안 가는 것이 아니라 단거리 주파용이었기 때문에 숙소로 돌아와서는 여행용 가방이며 4명분의 짐을 잔뜩 싣고 나니 사람이 타고도 여행용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아야 할 지경이다.

   8월 10일 금요일, PM 19:00
   여정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다

(주)청해진해운의 인천-제주간 오하마나호 승선권

<최초 계획이었던 인천↔제주 오하마나호 승선권>

   당초 계획은 인천 연안부두 여객선 터미널에서 금요일 저녁 7시에 출발하는, 1984년에 건조된 청해진 해운의 대형 여객선 오하마나호에 승선하는 것이 제주 여행의 첫 단추였다. 5인 기준으로 별도의 객실이 할당되는 1등 가족실을 522,500원에 이미 예약해 두었고, 해상의 악천후로 인해 배가 출항하지 못하거나 중간에 회항할 경우를 대비해서 토요일 아침 8시 15분에 인천공항발 아시아나 항공 OZ8597편 탑승권 4장과 김포공항에서 토요일 아침 6시 50분에 출발하는 제주항공편 탑승권 1장이 백업으로 예약되어 있었다. 1명은 예약 이후에 동참했지만, 같은 비행기 좌석이 모두 매진되어 불가피하게 남은 좌석을 찾다 보니 김포공항발 제주항공편이 달랑 1장 남아있었던 것이다.

백업으로 마련해 둔 인천 ↔ 제주 항공권

<백업으로 마련해 둔 인천↔제주 아시아나항공 탑승권>

국내선 항공편의 경우에 예약과 동시에 결제가 이루어져야 했고, 출발시각 이전에만 인터넷으로 취소하면 환불에 따르는 수수료 부담 없이 취소가 가능했기 때문에 혹시 모를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어떻게 되든 제주도로 일단 들어가고 보자는 심산으로 준비해 둔 것이었는데 바로 이것이 주효한 준비였음이 드러나는 사건이 생기게 된다.

   2개 팀으로 나누어서 우리쪽 팀 차량에 승차한 3명은 대전에서 수원, 안산을 거쳐 인천 연안부두에 오후 5시경 무사히 도착했는데, 대전에서 계룡시에 들러 짐을 내려놓고 인천으로 오는 또 다른 팀의 2명이 고속도로 사정으로 조금 늦게 도착한다는 요지의 전화통화가 계속적으로 1시간 동안 오고갔다.

   오후 6시 승선수속을 해야하므로, 일단 예약해 둔 표를 찾고 여객선 터미널에 남을 2명에게 표를 맡겨둔 뒤에 나는 대전에서 인수받은 차량을 인천지점에 반납하기 위해서 이동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얼마 안되는 거리를 살인적인 시내의 교통체증으로 인해 차를 인계하고 나서 배가 출항하는 저녁 7시까지 여객선 터미널로 복귀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결국 7시 조금 전에 예매한 표를 10% 환불 수수료를 공제하고 47만원을 환불받은 뒤에 계룡시에서 올라온 1팀의 차량으로 터미널에 있던 4명은 먼저 인천공항으로 이동하고, 나는 공항버스를 타고 현지에서 바로 인천공항 신도시로 들어갔다.

   8월 10일 금요일, PM 23:00
   섬 여행을 위한, 섬 아닌 섬에서의 1박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는 원래 뭍이 아니었다. 한진건설 등 대형건설사가 참여한 컨소시엄에서 공항 부지에 대한 기초공사와 각종 편의시설 등을 조성하는 공사가 한창이던 99년경에는, 2층 바이킹으로 유명한 월미도에서 배에 차를 싣고 들어가거나 공사에 관계된 차량과 장비, 물자들이 이동하던 율도선착장에서 오가는 바지선에 차량을 싣고 이동할 수 있는 그야말로 완전한 섬이었다.

   영종대교로 연결된 신공항 고속도로가 외곽순환로 등 서울 도심과 주변의 위성도시들을 연결하는 교통망과 잘 연계되어 있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99년도에 유달리 영종도에 사는 사람들이 사용하던 PC를 많이 A/S하고 조립해서 납품도 많이 했던 터라 다시 공항신도시를 밟았을 때의 느낌은 정말 새롭기 그지없었다.

   다 쓰러져 가는 섬 안에서 하나뿐인 주유소에, 이정표도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은 편도 1차선의 지방도 일색이었던 그 척박한 땅이,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선 이후 엄청나게 발전해 이제는 공항신도시에 들어서면 섬이라는 느낌도 나지 않는다. 다만, 밤이면 자욱하게 바닷가에서 밀려오는 해무(海霧)만이 그곳이 바다에 근접한 섬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주고 있을 뿐이다.

   8월 11일 토요일, AM 01:00
   섬 여행을 위한, 섬 아닌 섬에서의 1박


   내가 공항신도시에 도착할 때까지 일행들이 기다리던 PC방에서 밤 11시경에 나온 우리는, 섬 여행을 위한 섬 아닌 섬에서의 1박을 위해 근처에 있는 찜질방으로 이동했다. 한여름에 얼음방은 커녕 제일 낮은 온도의 방이 66도였고 마땅히 잘 데도 없는, 그야말로 안구에 쓰나미가 치는 상황이 발생했다.

   샤워를 하고 찜질방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우리는 수은주가 66도를 가리키는 방에서 잠드는 것이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모두 모여서 맥반석에 구운 계란과 시원한 식혜를 들이키고는 모두 뿔뿔이 시원한 곳을 찾아 흩어졌다. 10분도 채 안되어 열기가 온몸을 감싸고 도는 탓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일행 중에 밤에 잠 안자기로 유명한 1명을 찜질방 안에 있는 간이 PC방에다 불침번을 세워놓고 각자 알아서 잠을 청하게 되었는데, 김포공항에서 제주항공을 타야 하는 1명이 인천공항에서 새벽 5시 30분에 있는 첫차를 타기 위해서는 4시 30분에는 늦어도 일어나야만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놓은 방책이다.

   8월 11일 토요일, AM 04:38
   섬 여행을 위한, 섬 아닌 섬에서의 1박

  
더워서 자다 깨기를 몇 번을 반복하다가 결국 홀의 구석에 있는 에어컨 밑에 자리를 잡고 다시 잠을 청하면서 시계를 보았을 때 새벽 2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공기가 시원해지자 다시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화들짝 놀래서 일어난 것이 4시 38분이다. 잘려고 누우면서 2시간만 자고 일어나야 된다고 자기암시를 걸었던 것이 제대로 적중했나보다. 서둘러 넓은 홀 안에서 뒹굴면서 자고 있는 일행들을 한 명씩 찾아서 모두 깨우고 씻은 다음, 앞서 이동했던 1팀의 차량을 타고 가까스로 인천공항을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 2편에 계속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7/08/16 01:10 2007/08/16 01:10
Trackback Address :: http://www.laysys.com/trackback/26
[로그인][오픈아이디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제주 여행기 #1 - Prologue :: 2007/08/15 23:58
(주)청해진해운의 인천↔제주간 오하마나호 승선권

<주 3회 왕복운항하는 인천↔제주간 오하마나호 1등 가족실 승선권>


   모처럼 만에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보낸 3박 4일간의 여정은, 언제나처럼 긴긴 가뭄 끝의 단비처럼 해갈과 충족이란 단어로 포장된 큰 선물을 남겨주었고, 여기에서 비롯된 에너지를 초석삼아 이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금요일 밤 7시에 인천 연안부두에서 대형 여객선을 타고 토요일 아침에 제주항에 내려서 시작될 예정이었던 짧지만 긴 여정은, 여러 가지 우발상황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결국 백업으로 예약해 두었던 토요일 아침 8시 인천공항발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제주도에 입도(入島)하게 되는, 다소는 변형적인 모습으로 시작되었지만 유쾌하기 그지없는 시간으로 다가온다.

   제주도에서 보낸 시간과 그에 얽히고 섥혀 있는 모습들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계의 발자국 소리를 뒤로 한 채 추억이라는 단어로 재포장되어 기억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이겠지만, 적어도 당분간 찬바람이 불고 또 다른 하나의 여정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는 수순을 밟을 때 까지는 여흥(餘興)이 효력을 발휘해서 삶에 충실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5명이라는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인원이 동행하다 보니 계획단계와 여행의 와중에 좌충우돌하는 의견 충돌도 다소는 있었지만, 이것은 보다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을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아니었나 싶다. 바꾸어 말하면, 그런 요소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서기 이전에, 제주도에서 보낸 3박 4일의 시간을 반추하며 후일에 추억할 수 있는 담화거리로 만들기 위해서, 글로 남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2007/08/15 23:58 2007/08/15 23:58
Trackback Address :: http://www.laysys.com/trackback/25
[로그인][오픈아이디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이기도 하지만, 각 지역별 게이트웨이에 해당되는 터미널이나 역 주변엔 온통 구걸하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진을 치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구걸 공화국이기도 하다. 나이도 젊고 사지 멀쩡한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돈벌 생각은 안하고 물품 강매를 하는가 하면, 멀쩡하게 집도 있고 차도 있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노른자위 구걸 아지트로 "출근"해서 자식들 학비와 생활비를 버는 하루 일과를 마치는 사례도 지면을 통해 접했던 적이 있다.

   10년전인 1990년대 중후반의 사례를 보면, 서울 반포에 있는 고속터미널 경부선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표를 끊고 승차장에 나가 있노라면, 양팔이 모두 없는 상태로 목에 팻말과 구걸용 모금함(?)을 걸고 와서는 정중하게 예를 갖춘 후에 도움의 손길을 부탁하는 아저씨가 한 사람 있었다. 역설적이지만, 도와주는 사람이 불쾌해 하면서 마지 못해 꺼지라는 식으로 던져주는 돈은 도움을 바라는 사람이나 도움을 주려는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데, 적어도 이 사람은 매주 봤지만 불쾌하지는 않았었다.

   1999년에 오너 드라이버가 되면서부터 고속버스 이용이 뜸해졌다가 다시 뚜벅이족으로 돌아간 지금은, 고속터미널은 그대로 있지만 그때 그 아저씨는 어찌된 일인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현역'에서 은퇴했거나 다른 곳으로 '이직'했을 거라는 짐작을 해본다.

   반면에 요즘은 어떨까?

   며칠 전 주말에 같이 공부하던 선배가 타고 다니던 차를 바꾸면서 2대를 한꺼번에 집까지 끌고 내려가야 할 일이 생겨 비가 오는 와중에 차를 같이 몰아서 갖다주고는 역에서 서울행 KTX 표를 끊고 밖에서 잠시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온다.

   요즘은 세상이 하도 단순무식해서 열받는 일 있다고 기차에서 자고 있던 사람을 난도질 해서 죽이거나, 이유없이 재미로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불특정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푹푹 찔러대고, 맛깔나게 담궈가지고(?) 요단강 건너 북망산천으로 공짜 티켓 끊어서 보내주는 세상이기에 본능적으로 온몸의 촉수를 곤두세우며 경계태세를 취했다.

   그 이후, 그 사람이 다가와서 하는 행동과 말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한대 칠 뻔한 상황이 벌어진다.

   "장애인인데 껌 하나만 사주실래요 하나에 천원입니다."

   약 2초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그 인간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면서 몇 가지를 파악했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장애인증이 가짜임과 왼손에 들고 있는 후라보X 껌의 가격은 500원이라는 사실. 장애인증이 가짜라는 것은, 너무 인쇄상태가 조악했고 내가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 그런 형태의 장애인증은 본 적도 없고 만들어진다는 소리도 못들어봤고, 앞으로 만들어 지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가짜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사지가 멀쩡했기 때문이다. 다리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짝다리를 짚고 다리를 떨면서 구걸하지는 않을것이요, 손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양손에 장애인증과 껌을 다 들고 있을 수는 없다. 열 손가락의 각 마디 또한 정상이었다. 그리고, 조선말을 온게임넷 스타리그 해설자 뺨치는 속도로 매끄럽게 뱉어내는 인간이 장애가 있을리 만무했다.

   무엇보다 불쾌했던 것은 그렇게 사지 멀쩡하고 30대로 보이는 젊은 사람이 무려 2배나 남겨먹는 엉터리 장사를 하면서, 이 땅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제약이 많은 환경이지만 열심히 사시는 대다수의 선량한 장애우들을 욕보인다는 점이다. 장애가 있는 것과 생전 첨보는 껌파라의 500원짜리 껌을 천원에 사줘야 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결국 나는 손사래를 치며 껌 구매 거부의사를 밝혔고, 껌파라는 이어 1분 동안 예닐곱 명의 행인들에게 똑같은 멘트를 분당 한글 350자의 속도로 쏟아부으면서 강매를 시도했으나 아무도 껌을 사주지 않자, 짝다리를 짚은 채로 팔려고 가져온 것인지 팔다 남은 것인지 알 수 없는 껌들을 정리하면서, 바닥에 침을 찍찍 뱉어내는 쌍스러운 행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거 참 오늘 장사 되게 안되네'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만감이 교차하고 분기가 탱천(?)하려는 걸 억지로 참아내려는 찰나, 무지하게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저쪽에서 꾀죄죄한 몰골과 남루한 행색을 동시에 갖춘, 가히 노숙자 업계의 프론티어라고 할 수 있는 할아버지가 절뚝거리며 어설픈 걸음걸이로 다가오더니, 껌파라 앞에서 멈추곤 엄청나게 불쌍한 표정으로 이렇게 얘기한다.

   "저.. 저기.. 동전 있으면 500원짜리 하나만.."

   '할배 나이스 샷!' 이라는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나는 껌파라가 분명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법으로 맞대응하지 않을까 했는데, 내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두 눈을 부릅뜨다 못해 치켜뜨고, 노숙자 할아버지를 쏘아보면서 껌파라는 이렇게 말했다.

   "죄송한데요 껌 하나만 사주실래요 하나에 천원입니다."

   정말 재미있는 상황이 아닌가? 영화 넘버 쓰리에 나오는 음유시인적인 표현을 빌자면, "개가 소한테 껌을 강매하고 소가 개한테 삥을 뜯는" 정말 아이러니컬한 상황인 셈이다.

   철도공안 당국은 각성해야한다. 쓸데없이 근무복 입고 대합실 안에 서서 목에 힘주고 서 있는 시간을 좀 줄이고, 역 주변의 이런 유해한 환경요소들을 제거하는 데에도 앞장서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말하자면, 역이 발전하고 승객수가 많아지려면 대합실과 편의시설이라는 소프트웨어도 중요하지만 역사(驛舍)와 그 주변에 널부러져 있는 하드웨어적인 측면의 인프라 또한 중요하다는 얘기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7/07/15 10:55 2007/07/15 10:55
Trackback Address :: http://www.laysys.com/trackback/24
[로그인][오픈아이디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밥도시락 하나에 물병 하나 달랑 들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는 산이 별로 없고,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 이른바 등산의 불모지에 살았던 나는 주말이라 해서 별반 산에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혼자 산에 올라갔다 내려올 만큼 편집광적으로 산행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대구에 살았던 지난 3년간 팔공산에 몇 번 올라갔다 온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문득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은 욕구가 불끈 샘솟았고, 그 즉시 마음이 맞는 선·후배 3명을 섭외해 팔공산 초입에 있는 가산산성에 다녀오게 됐다.
  

   가산산성 찾아가는 길(대구방향에서 갈 때)

   ① 대구 ↔ 안동간 5번 국도 안동방향 주행 (중앙고속도로 칠곡 나들목 진출 또는 시내길 이용)
   ② 동명사거리에 우회전 (팔공산, 동화사 방면)
   ③ 동명저수지 → 구덕네거리 → 홍신교 → 기성삼거리 11시 방향 좌회전 후 500미터 직진
       ※ 좌회전 군위, 부계 방면 79번 지방도 초록색 이정표에 기재되어 있음
   ④ 기성2리 삼거리 좌회전 (우측은 법성교 다리 건너 대구공항, 동화사, 파계사 방면)
   ⑤ 동명동부초등학교 → 농협 하나로마트 → 한우판매장 → 팔공산 자동차극장 입구 전
       우측커브 돌자마자 좌회전 (삼거리에 가산산성 입간판 서 있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집에서 출발해서 동명으로 가기 전 칠곡 3지구에서 한 줄에 천원짜리 김밥을 24시간 영업하는 김밥집에서 몇 줄 사고, 산에 오르며 마실 물을 몇 병 사서 한병씩 나눠가지고, 산행을 시작했다. 초입에서부터 동문 - 남문 등을 거쳐 가산바위까지는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했으나 걸음이 좀 빠른 우리 일행은 약 1시간여 만에 가산바위에 도착했다.

   남문을 지나 조금 올라간 지점에서는 다람쥐 한 마리가 조그만한 바위 위에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이 보여 재빨리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한 장 찍어줬다.

   산행로의 중간중간에 습지가 형성되어 야생화가 만발해 있고 수목의 어우러진 모습이 조금은 이국적인 모습을 연상케 하는 형상이다. 찬바람이 불 때쯤 한 번 더 오게 되면 참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매서운 겨울바람에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갑자기 떠올라서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 가학(虐)적인 생각이 아닌가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 내 생각을 읽은 나무가 마조히스트라면 참 좋아할 일이지만 ;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산바위 입간판에서 기념사진을 몇 장 찍고는 바위 위에 올라 가져간 김밥을 까놓고 식사를 했는데, 산 위에서 먹는 김밥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산에 오르며 흘린 땀과 밥맛은 비례하는 것이, 사실은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듯 했다. 등산과 일이 좀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사람은 네 명인데 김밥도 4줄인지라 금방 동이 났는데, 지난번에 왔을 때는 먹을거리를 전혀 챙겨오지 않아서 단체로 등산온 아줌마들한테 김밥하고 음료수를 앵벌이해서 먹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라 또 한바탕 웃었다.

   바위 위가 워낙 넓어서 "꼬맹이가 배가 고프다고 해서 그러는데 먹을거 좀 나눠주시면 안될까요" 해서 얻어가지고 반대편 바위쪽 안보이는 구석에 가서 번개같이 먹었던 일 하며, 올라가는 도중에 휴식지점에서 귤을 한봉지 들고 까먹고 있는 아줌마들 옆을 지날 때 20년만 젊었어도 옆에서 자빠지면서 '아- 배고파서 어지러워'라고 모성본능을 자극했을거라는 우스개소리까지 시시껄렁한 소리들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등 언저리에 차 있던 땀이 식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초행길이 아니어서 가산바위에서 입구 주차장으로 내려올 때는 약 30분만에 지름길을 타고 올라갈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하산할 수 있었다.

   산행이 좋은 점은, 맑은 공기를 마시며 몸과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다는 것 외에도 올라가고 내려오는 동안에는 전혀 다른 생각이 들지 않고, 올라가는 것과 내려오는 것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부가적으로 수려한 경치를 즐길 수 있다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기도 하다.

   올 여름이 가고 나면 다음 산행은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산으로 가서 단풍놀이를 해야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7/06/06 18:23 2007/06/06 18:23
Trackback Address :: http://www.laysys.com/trackback/19
[로그인][오픈아이디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지막 하루를 남겨둔 3월 달력을 뒤로 한 채 집을 나섰다.

   근 몇달간 매양일색 KTX 였던 휴가길 행로를 바꿔보고 싶은 욕망이 불끈 샘솟는다. 대구시내는 여타의 중남부지방 도시와 마찬가지로, 저 멀리 서해바다 건너 사막에서 날아온 뽀얀 흙먼지로 온통 뒤덮여 있었고,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의 수 또한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대구에서 경기도 안산까지 300여 킬로미터를 가야하는데 반해,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19시 30분쯤 나선 내 발걸음은 까닭을 알 수 없이 가볍기만 하다.

   황사를 조금이라도 피해보고자 아파트 통로 입구에서 5분 전에 미리 불러둔 콜택시에 올라타고 북부정류장으로 향한다. 북부정류장에 도착했을 때엔,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 경상북도의 경계선을 넘어 충북이나 경기도로 넘어가는 장거리 시외버스는 이미 19시 30분에 막차가 모두 떠나버린 상태다. 20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출발하는 구미행 시외버스에 무작정 몸뚱아리를 실었다.

   범인(凡人)들은 적잖이 당황할 만한 이런 상황 - 직행할 수 있는 막차가 끊어져 버린 시츄에이숀(?) - 을 역마살에 방랑벽까지 겹쳐버린 나 같은 사람들은 즐기게 마련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분명 돌고 돌아서 내가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 필시 있을 것이라는 쓸데없는 신념과 여지껏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전례가 모종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남구미 나들목에서 구미시내로 진입한 시외버스는 순천향대학병원이 있는 낯익은 구미공단 정류소를 지나 종합시외버스터미널에 당도했고, 구미에서도 역시 대구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장거리 시외버스는 포항이나 부산에서 출발해 구미를 들러 오산, 수원이나 인천 등지로 가는 심야버스 몇을 제외하고는 자취를 감춘 상태다. 터미널의 시각표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인천공항으로 가는 공항버스가 있을 거라는 것도 짐작해본다.

   5년 전쯤에 늘상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는 반대로 터미널 앞 택시정류장 건너편에서 택시를 잡아고는 "역전이요"를 외친다. "기차 타시게요?" 라는 기사아저씨의 반문이 메아리처럼 되돌아온다.

   약 0.5초 동안의 시간에 내 머리를 스친 생각은, "네"라는 대답을 하면 "어디까지 가시는데요?"라고 물어본 연후에 지근거리를 가는 손님이면 늦은 시각과 열차의 긴 배차간격을 핑계삼아 자기 차를 타고 가라고 꼬드길 택시기사의 다음 행동에 대한 예측이었다.

   예측가능한 선문답을 피하기 위해 지레짐작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아뇨, 누구 만나러 가는데요." 라는 대답을 돌려줬더니 "아, 그래요. 요즘은 기차 타는 손님들은 뒷쪽에 내려드리거든요. 그래서 물어보는거에요."라는 예상 밖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택시비를 지불하고 역전에 내려선 뒤에야 현문우답(?)에 대한 연유를 간파할 수 있었는데, 민자역사로 멋지게 탈바꿈한 구미역의 모습을 보고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단층짜리 작은 건물에 역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작은 다리 하나만이 우두커니 역을 가로질러 서 있던 과거 역사의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사뭇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제트기의 애프터 버너(AfterBurner)에서 재연소된 화염이 분출되는 사구의 그것처럼 아가리를 떡하니 벌리고 있는 계단 끄트머리의 입구부터 시작해서, 던킨도넛 매장 진열대 위의 잘 정돈된 빵처럼 정형화된 박스형 공간에 들어서 있는 내부의 음식점들까지 하나하나가 눈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기왕지사 늦어버린 집에 가는 길을 더욱 즐겁게(!) 가기 위해 자동발매기에서 무궁화-KTX 환승표를 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전역에 도착해 약 20분간을 쉬어가는 여정이다. 21시 26분에 구미역을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는 23시 05분에 대전역에 도착했고, 때마침 강릉에서 출발해 종착역인 대전으로 들어오는 전기기관차와 객차 4량이 한쌍으로 어우러진 열차행렬이 목전에 들어온다.

   디젤기관차 특유의 굉음과는 달리, 조용히 이음새 사이를 지나가는 철제 휠의 뚝딱거리는 소리만이 선명하게 청각신경을 자극하는 듯 했다.
   
   플랫폼에 멈춰선 전기기관차는 지붕위의 전차선에 붙어 있던 팬터그래프(Pantograph) - 트롤리 폴(Trolley Pole), 뷔겔(Bügel) 등과 같이 고정부분과 유동부분의 사이에서 전력을 전달해주는 집전장치(集電裝置)의 한 종류 - 를 내리면서 강릉부터 참아온 긴 숨을 몰아쉰다.

   검수원들이 차륜과 각종 기계장치들을 망치로 두들겨가며 육안으로 살펴보는 동안 객차 내부에서는 몇 명의 사람들이 부지런히 좌석 머리받침에 걸쳐 있던 종이재질의 커버를 벗겨내고 있었고,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디카를 꺼내 기관차의 측면부를 촬영했다. 잘못된 일은 없지만, 왠지 기관차의 휴식에 방해될 것 같은 조심스러움이 한층 더해진 탓이다.

   일찍이 전철화된 중앙선의 일부라거나, 태백선이나 영동선 철도와는 달리 경부선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대전역에서 이렇듯 전기기관차를 볼 수 있는 것은 그리 얼마 되지 않은 일로, KTX가 다니게 되면서부터이기에 더욱 새롭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우두커니 서 있는 육중한 전기기관차를 바라보면서, 쉴새없이 달려온 녀석의 지금처럼 나도 쉬고 싶다는 생각에 잠긴다.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번 꼴로 떠나는 짧은 여행이 계속되고 있지만, 시나브로 많은 것들이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

   그렇지만, 이 여로에서 내가 얻는 감흥과 카타르시스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의 범주에 속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역마살과 방랑벽에서 기인하는 적과의 동침같은 나홀로 여행을 도저히 끊을 수가 없나보다.

   3박 4일간의 짧은 휴가에서 돌아온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내 머릿속은 벌써부터 관광교통 시각표 책자속의 타임테이블을 이리저리 조합하며 다음 여로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7/04/05 22:04 2007/04/05 22:04
Trackback Address :: http://www.laysys.com/trackback/17
[로그인][오픈아이디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외가쪽 어른들이 모두 돌아가신 95년 이후로 발길이 뜸해질 수 밖에 없었던 영덕을 다시 찾은 것은, 읍내를 지나 축산면에 있는 작은 마을에 볼일이 있어서였다.

   새로이 개통된 대구-포항간 고속국도(일명 대포고속국도)를 타고 1시간 남짓한 시간을 달리자, 익숙한 해변을 끼고 7번 국도의 수려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 수학여행 왔던 학생들이 사진을 찍다 실족사했다는 얘기가 왕왕 들리던 - 보경사가 있는 청하를 지나 두어 개쯤 있는 군부대 위병소를 지나치자, 20년 전쯤엔 까무잡잡한 얼굴에 눈매가 매서운 해병대 헌병들 - 빨간 글씨의 하얀 철모 - 이 버스에 올라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를 외치던 검문소를 만난다.

   지금은 교통량이 많이 늘어서인지 아니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 무장탈영이나 중요한 범인의 도주로 차단 등 - 불심검문이 없어진 탓인지 지나다니는 버스를 세우고 검문검색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새로이 단장한 화진휴게소의 모습과 경보화석박물관,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음식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어촌마을들을 지나치기를 여럿, 그나마 머리속 어느 구석엔가 다소 익숙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강구사거리가 나타난다.

   7번 국도와 영덕은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본적이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306번지이기도 하지만, 부모님의 고향이 근처에 자리한 탓도 있고 어릴적 첫 여행에 대한 기억의 대부분이 보통 서너시간은 버스를 타고 외가집에 가던 방학중이나 주말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동에 관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예천, 안동을 거쳐 청송보호감호소가 있는 진보면을 지나가는 5시간 거리의 제1코스와 구미, 경주에 연하는 경부고속국도를 달려 포경산업도로를 지나 7번 국도로 접어드는 제2코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던 유년시절의 외가집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특히 가는 길보다는 돌아오는 길이 더욱 그랬는데, 오랜만에 온 외손자들을 위해서 만들어둔 장류와 마른반찬 등을 잔뜩 싸서 담아주시는 외할머니 덕분에 돌아오는 길 식구들은 빈 손이 없을 정도로 들고, 메고, 짊어지고 버스를 타고 오곤 했었는데, 영덕에서 포항이나 안동까지는 버스가 자주 다녔지만 포항이나 안동에서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터미널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무척 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식사 이후 4차선으로 확장된 새로운 7번 국도를 달리며 영덕읍내를 지나칠 무렵,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자주 드나들던 때에는 작은 변화에 둔감해 잘 몰랐던 것들이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근근이 몇 번 들르지 못하는 동안에 큰 변화로 탈바꿈해 이제는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이 다분히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 속에서 전동차에 치인 듯 멍한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동안에 느끼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감각과는 다른 어떤 느낌이 뇌리를 스친다. 하루하루가 빠르게 흘러간다고 느끼면서도 정작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시간의 발자국 소리 자체에 대해서는 둔감했던 내 자신이 아차 싶었다.

   길어야 100년, 얼마 주어지지 않은 시간을 알차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지난 시간의 우유부단함과 부화뇌동에 대한 자숙의 동기를 7번 국도와 영덕의 변화가 부여해준 셈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회상의 강을 건너는 동안, 산산이 조각난 채 강바닥 어딘가에 머물러 있던 기억의 편린을 무수히 건져내며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7/03/15 21:53 2007/03/15 21:53
Trackback Address :: http://www.laysys.com/trackback/15
[로그인][오픈아이디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Aesthetics of night :: 2007/02/19 18:58

   제아무리 거대한 동물의 시체같은 도시라도 밤풍경은 아름답다.

   사주팔자에 거명된 역마살과 아버지의 은덕에 힘입어 후천적으로 생겨나버린 방랑벽을 주체하지 못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려야 하는 행로의 와중에 내가 서 있던 시간은 모두 밤이었다.

   깨어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의 흑백논리로 무장하기에 앞서 '밤과 어두움'이라는 명제는,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나를 제외한 여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용히 휴식을 취하거나 내일을 준비하는 요지부동의 수면시간을 향유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집중력과 애착이 배가되는 발판이 되어준다.

   다시 말해 일조량이 전혀 없어 어두운, 그래서 환하게 인공적인 조명을 만들어 비추어야만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가져다 주지만, 한편으로는 그에 수반되는 행동상의 제약으로 인해 적어도 '나'라는 한 사람에 대해서 만큼은 철저하게 조용하고 안정적이며 모든 효율이 제고되는 신비의 명약같은 공간감을 가져다 준다는 뜻이다.

   - 비록 그것을 부여잡고 계속 있다가 종국에 쏟아내는 것은 불면에 수반되는 두통과 무기력감이지만 -

   언젠가 직장 동료가 우스개소리로 '넌 유럽으로 가면 시차가 딱 맞아서 성공하겠다'라는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어두워지는 시간대에 고정적으로 길들여져 있는 상태가 아니라 '밤'이라는 환경에 최대 토크(?)를 내도록 설계되어 있는 엔진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유럽으로 간다한들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지금의 시간대가 아닌 유럽의 밤에 또 길들여질 것이 뻔하다면 너무 궤변일까?

   언젠가 학창시절에 엠씨X퀘어와 같은 집중력 배가장치를 사용했던 것처럼 나같은 '밤 지향적 인간'이 집중력을 배가시키고 정신을 정화할 수 있는 모종의 장소를 제공하는 서비스업이 있다면 아마 꽤 많은 수요자들이 몰려들 것이라 생각한다. 인공적으로 24시간 중단없는 밤 환경을 제공하는 일종의 테마 플레이스 말이다. -_-b

   얼핏 들으면 '히키코모리(주=은둔형 외톨이)' 같은 상상이지만, 호주와 우리나라의 여름과 겨울이 거꾸로기 때문에 하계스포츠나 동계스포츠를 서로 스와핑(?)해가며 즐기는 사람들이 있듯 뭐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지 않은가?

   다행스럽게도 사람에 따라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 이상을 방 안에 틀어박혀 사는 히키코모리와 나는 질적으로 틀리다는 분명한 확증이 있다.

   식구들이나 어느 누구와도 대화를 잘 하고,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나 TV 시청을 하거나 인터넷에 몰두하는 은둔형 외톨이들과는 달리 정상적으로 밤에 조금 늦게 잘 뿐 어느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낮에는 정상적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자기혐오나 상실감 또는 우울증 증상 따위는 없다.

   히키코모리를 동경하는 야간지향적 인간형이라고나 할까? ^^;
   (젠장, 꿈은 이루어진다고 누군가 어디서 외치는 환청이 들린다 -_-b)

   주접스러운 명절 연휴 마지막 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7/02/19 18:58 2007/02/19 18:58
Trackback Address :: http://www.laysys.com/trackback/11
[로그인][오픈아이디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역마살에 방랑벽까지 겹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국을 혼자서 유람하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연 7%에 달하는 물가인상률 덕분에 대중교통 운임도 옛날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신흥 교통수단도 많이 등장하게 되었다.

   지난 금요일부터 2박 3일간 휴가를 다녀오면서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 서울과 대구를 오갈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 중에서 가장 저렴한 것을 이용했는데,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지금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일반고속"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1] 2월 휴가때 승차했던 삼화고속 일반승차권

    
     ※ 서울 ↔ 대구간 대중교통 운임요금표(2007년 2월 12일 현재 기준)
         ○ 일반고속/우등고속/심야우등고속(서울강남-대구): 14,600원 / 21,600원 / 23,800원
         ○ 일반고속/우등고속/심야우등고속(동서울-대구) : 14,800원 / 21,800원 / 24,000원
         ○ 무궁화호/새마을호/KTX(동대구-서울) : 20,000원 / 29,400원 / 38,600원
         ○ 시외버스는 고속버스와 운행구간 중복으로 미운행


   상기 표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가장 비싼 KTX 와 가장 저렴한 일반고속의 운임 차이는 무려 24,000원이다.

   10여년 전 우등고속버스가 새로이 도입되면서 1일 몇 대 꼴로 운행대수가 줄어든 일반고속버스는 앉았을 때 무릎이 닿는 불편함과, 시트를 뒷쪽으로 젖혔을 때 허리의 곡선과 일치하지 않는 불편함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우등고속과 비교가 되면서 사람들이 외면하는 듯 했으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나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지갑이 얇아진 마니아 층(?)을 중심으로 주가를 한층 높여갔다.

   CRDi 라든가 터보인터쿨러 같은 신기술이 접목되지 않은 옛날 순정 8기통 또는 12기통, 16기통의 디젤 엔진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일반고속과 우등고속은 편의성의 차이 외에도 소요시간의 차이라는 단점을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 말 한 마리가 45Kg 의 짐을 짊어지고 30Km 를 가는데 걸리는 시간과 27Kg 의 짐을 짊어지고 같은 거리를 가는데 걸리는 최단시간은 분명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이치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 일반고속의 승차정원은 45석, 우등고속의 승차정원은 27석이다 -

   대우자동차에서 생산하는 로얄 크루져 같은 신차들이 등장하면서는 좌석의 배열도 신체구조를 감안하여 어느 정도의 공간을 확보하면서 차체가 커지게 되었고, 고속국도의 선형개량공사가 많이 완료됨과 동시에 중부내륙선과 같은 고속국도들이 신설되면서, 오늘 탔던 버스처럼 속도제한장치가 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3시간 8분만에 서대구 터미널에 나를 내려주는 기염을 토하는 일도 이제는 일상 다반사가 되어버렸는데…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 서울에서 대구로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약 3시간 45분이었다.

   속도제한장치가 고장났는지 일부러 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유야 어찌되었건 120Km/h 이상으로 칼질을 하면서 달리는 심야우등고속을 운이 좋아 타지 않는 이상에는 절대 3시간 30분만에 오는 것은 불가능했었고, 반포에서 궁내동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구간이 조금이라도 막히는 날에는 어김없이 4시간을 찍곤 했던 길이었는데 이제는 평균이 3시간 10분이 되어버렸으니 엄청난 단축이 아닌가?

   그렇지만, 점점 짧아지는 소요시간은 차치하고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에드몬슨식 승차권을 수기 개표기로 '딸깍'하고 끊어내며 탔던 비둘기호 열차처럼 일반고속도 나중에는 속도경쟁과 시간 경쟁에서 밀려 결국 자취를 감추는 전철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많은 것들이 주변에서 사라지고, 그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일들이 되풀이되고 있다. 시내 곳곳에 뚫린 도로교통망이 그렇고, 자고 일어나면 바뀌고 무언가 새로 개발되는 IT 분야의 여러 벤더들이 쏟아내는 아이템들이 그럴 것이다.

   일상속에서 매일 그것을 접하고 사는 사람들은 조그마한 변화를 잘 감지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짧게는 한 달에 한 번 길게는 몇 달에 한 번씩 장거리를 여행하다 보면 특히 도심에서 일어나는 건물의 변화라든가 이런 대중교통수단의 변모는 알 듯 모를 듯한 여운과 함께 무언가 카타르시스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이런 기록들을 시간의 흐름과 발맞추어 잘 정리해 놓는다면, 분명 후세에는 재미난 자료가 될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7/02/12 01:27 2007/02/12 01:27
Trackback Address :: http://www.laysys.com/trackback/3
주드 | 2007/02/12 15:03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한동안 일을 하다가 지금 잠시 쉬는 중인데, 여행을 갈까 말까 고민중이거든요.
이 포스트를보니 왠지 당장 어디론가 떠나고 싶습니다.^^;
Laysys | 2007/02/13 00:38 | PERMALINK | EDIT/DEL
가끔 심장이 머리에서 뛰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할 때가 있죠.
머릿속을 충동질하는 심장을 지니고 있다는 건 아직 젊다는 반증이 아닌가 합니다.
가까운데라도 훌쩍 떠나서 바람 한 번 쐬고 오세요 ^^;
[로그인][오픈아이디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 PREV #1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