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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행기 #1 - Prologue

[ 운암지에서 바라다 본 칠곡 3지구 야경 ]
늦은 시각에 이른 도착을 위해 출발한 우리는 입장 화물차 휴게소까지 단박에 달려가는 기염을 토한 끝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시 빗방울 사이를 뚫고 달리기 시작했다. 서울에 도착하면 비가 그칠 것이라 했던 예상을 뒤엎고 궁내동 톨게이트를 빠져나오고 나서도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게 우리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판교에서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로 갈아타고 태릉에 이르러서야 겨우 서울로 입성할 수 있었는데, 이 거대한 동물의 시체 같은 도시의 동북쪽은 아직 비에 적셔지지 않은 상태 그대로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4년여의 군생활을 훌륭하게 마무리하고 본가로 입성하는 후배의 짐을 내려준 뒤에도 우리는 석별의 정을 못내 아쉬워하며 아침까지 서울에서의 일정을 연장하기로 묵시적인 합의를 했다.
새벽 1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나는 서강대교 북단의 당인리 화력발전소 근처에 있는 한 카페로 일행을 이끌었다. 10년쯤 전에 영등포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마음이 맞는 회사 사람들과 퇴근 후에 자주 찾던 곳이었는데, 아직 영업을 하고 있을까 반신반의했던 것은 기우였다.
단지, 영업시간이 새벽 3시에서 2시로 한 시간 단축된 것만 달라졌을 뿐 상호도, 인테리어도, 적당히 편안했던 의자도 모두가 그대로였다. - 그러나, 사람들은 바뀌었다. - 너무나도 모든 것이 빨리 바뀌고 변해가는 것이 익숙한 서울의 생활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나 보다. 어쩌면 그것이 빨리빨리 공화국,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수도 서울의 트렌드이자 매력일 수도 있겠지만…
7층 건물 꼭대기에 있는 카페 안에서 통유리를 통해 내려다보는 한강과 어우러진 서울의 야경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은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창밖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동안엔 10년 전 그 자리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던 사람들의 모습이 희뿌연 연기처럼 주변을 떠도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가슴 한구석이 아려온다. 정이라는 녀석이 이래서 무서운 것인가…
가끔 다가오는 무료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생각에 잠길 때면, 5년 후 아니 10년 후 그 이상의 내 모습에 대해 막연하게 상상하면서 어떤 모습일까를 궁금해하곤 한다. 카페에 앉아 있던 그 시간도 그랬다. 향수병 같은 과거의 기억에 흠뻑 젖어 다시 10년 후쯤엔 어떤 모습으로 지금 이 순간을 추억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 영업시간이 다 되어가니 계산을 먼저 해 달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선릉역 앞에 있는 찜질방에서 그리 길지 않은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 뒤에 9시쯤 되었을 무렵 그리 이르지 않은 아침식사를 해결하고자, 두어 블럭 떨어진 신사동의 한 식당으로 이동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우리는 개시손님이었고,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식사를 하면서 불쑥 고개를 쳐든 생각은, 오랜만에 서울을 찾아 무심코 움직이는 것 같지만 내 머리가, 몸이 움직이는 곳은 다 예전에 자주 다니던 동선과 가깝거나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이것 역시 정(情)과 관계가 있는 일일까?… 아니면, 나이를 먹어서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열정이 줄어든 탓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는 민간인이 되어 버린 후배 녀석을 집앞에 떨어뜨려 놓고 대구로 내려가는 길은 '다시 돌아가야 할 자'들만의 전유물이다. 서운함과 섭섭함을 묻어버리기 위해 약속이라도 한 듯 나를 포함한 두 사람은 별로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지만, 얼마 안 가 이내 차 안에는 적막감이 감돈다. 잠시 잠깐의 대화로 묻히기에 4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녹록지 않은 무게로 다가온다는 반증이다.
대구에 내려와서 푸념처럼 늘어놓은 "4년 동안 옆에서 재잘거리던 녀석이 없으니까 너무 허전해"라는 이야기에 "오빠도 이제 장가갈 때가 됐나 보다"라는 동생의 말이 그리 밉살스럽지만은 않다. 다시 찾은 서울, 한강 둔치는 많은 것을 떠올리고 추억할 수 있는 촉매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서울과 한강, 그리고 전역해 버린 후배 녀석이,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작은 창문을 여는 데 필요한 또 하나의 무형의 열쇠로 등극하는 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