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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sthetics of night :: 2007/02/19 18:58

   제아무리 거대한 동물의 시체같은 도시라도 밤풍경은 아름답다.

   사주팔자에 거명된 역마살과 아버지의 은덕에 힘입어 후천적으로 생겨나버린 방랑벽을 주체하지 못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려야 하는 행로의 와중에 내가 서 있던 시간은 모두 밤이었다.

   깨어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의 흑백논리로 무장하기에 앞서 '밤과 어두움'이라는 명제는,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나를 제외한 여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용히 휴식을 취하거나 내일을 준비하는 요지부동의 수면시간을 향유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집중력과 애착이 배가되는 발판이 되어준다.

   다시 말해 일조량이 전혀 없어 어두운, 그래서 환하게 인공적인 조명을 만들어 비추어야만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가져다 주지만, 한편으로는 그에 수반되는 행동상의 제약으로 인해 적어도 '나'라는 한 사람에 대해서 만큼은 철저하게 조용하고 안정적이며 모든 효율이 제고되는 신비의 명약같은 공간감을 가져다 준다는 뜻이다.

   - 비록 그것을 부여잡고 계속 있다가 종국에 쏟아내는 것은 불면에 수반되는 두통과 무기력감이지만 -

   언젠가 직장 동료가 우스개소리로 '넌 유럽으로 가면 시차가 딱 맞아서 성공하겠다'라는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어두워지는 시간대에 고정적으로 길들여져 있는 상태가 아니라 '밤'이라는 환경에 최대 토크(?)를 내도록 설계되어 있는 엔진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유럽으로 간다한들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지금의 시간대가 아닌 유럽의 밤에 또 길들여질 것이 뻔하다면 너무 궤변일까?

   언젠가 학창시절에 엠씨X퀘어와 같은 집중력 배가장치를 사용했던 것처럼 나같은 '밤 지향적 인간'이 집중력을 배가시키고 정신을 정화할 수 있는 모종의 장소를 제공하는 서비스업이 있다면 아마 꽤 많은 수요자들이 몰려들 것이라 생각한다. 인공적으로 24시간 중단없는 밤 환경을 제공하는 일종의 테마 플레이스 말이다. -_-b

   얼핏 들으면 '히키코모리(주=은둔형 외톨이)' 같은 상상이지만, 호주와 우리나라의 여름과 겨울이 거꾸로기 때문에 하계스포츠나 동계스포츠를 서로 스와핑(?)해가며 즐기는 사람들이 있듯 뭐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지 않은가?

   다행스럽게도 사람에 따라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 이상을 방 안에 틀어박혀 사는 히키코모리와 나는 질적으로 틀리다는 분명한 확증이 있다.

   식구들이나 어느 누구와도 대화를 잘 하고,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나 TV 시청을 하거나 인터넷에 몰두하는 은둔형 외톨이들과는 달리 정상적으로 밤에 조금 늦게 잘 뿐 어느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낮에는 정상적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자기혐오나 상실감 또는 우울증 증상 따위는 없다.

   히키코모리를 동경하는 야간지향적 인간형이라고나 할까? ^^;
   (젠장, 꿈은 이루어진다고 누군가 어디서 외치는 환청이 들린다 -_-b)

   주접스러운 명절 연휴 마지막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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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9 18:58 2007/02/19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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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여 년 전쯤 상상속에서 미래의 어느 시점부터엔가는 가능하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믿었던 일들이 하나 둘씩 현실이 되면서 그에 부합하는 디바이스들 또한 진화되고 새로이 고안되어 시장에 출시되기 시작했다.

   소위 말하는 온라인(On-line)의 점접이 집이나 PC방 등 고정된 장소에 국한되다 보니 이동을 하면서 대중교통수단의 티켓을 예매·예약하거나 메일을 확인하고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등의 일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가능하지만 절대 보편화 될 수 없는 것이었다.

   필자가 사용하던 SK-Telecom이나 KTF, LGT 등 여타의 - 과거에는 존재했지만 지금은 없어진 - 셀룰러 폰 또는 PCS 사업자의 제한된 1세대 CDMA 망을 이용해서 PPP(Point to Point Protocol) 접속을 하면 제한적인 속도 - 약 14.4Kbps 에서 33.6Kbps 정도의 대역폭을 가지는 - 로 인터넷이나 PC 통신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었지만, 이 또한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으로 인해 비싼 요금이 책정되어 있기 일쑤였다.

   [사진 1] 팬택 계열의 USB 방식 EV-DO / HSDPA 겸용 어댑터 IM-H100

   작년 12월 태블릿 PC와 UMPC 등의 서브급 휴대용 PC들에 관심을 갖고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하던 중 워크피씨라는 사이트에 가입을 하게 되었고, 많은 게시물들 중에서 단연 눈에 띄게 된 것은 SK-Telecom 의 T-Login 서비스가 전국망 거점을 구축하면서 USB 방식의 어댑터가 시판중이고, 공동구매 및 공동패킷이라는 아이디어의 실현을 통해 종량제 과금방식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피큐아이넷과 연계하여 실시하고 있던 공구이벤트에 참여해 12월 3일 그토록 기다리던 IM-H100을 처음으로 받아들고 설치해서 성능과 사용환경 테스트를 하던 날은 이것저것 궁금했던 것들을 시험해 보느라 새벽 늦은 시각까지 맑은 정신으로 올뺴미 근성을 발휘하기도 했다.

   가입한 달로부터 3개월간 데이터 무제한 프로모션을 적용받아 기본 1G 트래픽에다 3G를 더 얹어서 4G 까지 무료사용이 보장되고, 이후 추가되는 트래픽은 위에서 언급했던 공동패킷의 힘을 빌어 실질적인 무제한 사용이 가능한 권리를 가진 셈이었다.

   사진에서 계속 보던 IM-H100의 모습은 블랙과 레드의 투톤 컬러가 오묘하게 조화된, 절도있는 차분한 색상이었지만 실질적으로 내가 배송받은 세트는 흰색과 그레이 투톤의 조합으로 다소는 실망했지만 계속 사용하면서 보다 보니 나름대로 이것도 괜찮은 느낌을 주는 듯 하다.

   PnP(Plug & Play) 의 특성상 장치를 처음 USB 포트에 연결하기 이전에 제공된 100MB짜리 미니 CD 를 넣고 Sky IM-H100 Handset 드라이버를 마이컴의 XP 프로페셔널에 설치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전원 LED 와 무선신호 수신세기를 나타내는 LED 가 점등되는 모습을 지켜볼 때는 격세지감 그 자체였다. 이제는 광선로를 타고 넘나드는 인터넷 바다에 이어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무선 기반의 인터넷 접속과 사용이라니…

   우리집은 아파트 5층이라 전파의 회절성을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전파 수신환경은 꽤 괜찮은 편이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3G+ 로 접속은 되었지만 전파의 신호 세기는 LED 4칸 중 2칸을 넘기지 못했고 사용하는 체감 속도 또한 케이블 모뎀이나 xDSL 방식의 인터넷 Lite 버젼을 쓰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네이버나 다음의 메인 페이지를 로딩하려면 한참이 걸렸고, 중간에 이미지 로딩을 위해 지연되는 시간 또한 50Mbps 급 VDSL 에 익숙해진 내게는 고역이나 다름없었다.

   이제는 IM-H100 을 구입한 지도 어느새 2개월이 지나고, 지금은 초기 가입자 수요에 비해 좋지 않던 기반시설이나 환경이 많이 좋아져 집에서도 수신세기를 타나내는 LED 또한 평균적으로 3칸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무선인터넷이라는 특성상 대용량의 컨텐츠를 다운로드 받는 목적보다는 가벼운 웹사이트 서핑이나 정보 검색, 그리고 메일 송수신 등에 이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적어도, EV-DO 전용 모뎀인 CCU-550 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직도 대한민국의 많은 지역에서 IM-H100 을 구입하고도 3G+ 서비스 권역에 해당되지 않아 울며 겨자먹기로 EV-DO 전용접속을 통해 무선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 유져들이 많이 존재한다. EV-DO 만 해도 전국 84개 읍면동 사무소 주변은 모두 소통이 되니 사용에는 무리가 없을테지만, 이론적으로 2Mbps 와 최대 14.4Mbps 라는 대역폭의 차이는 실제적으로도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IM-H100 은 최대 14.4Mbps 를 낼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으니 그냥 묻어둬도 될 부분이 아닐까 싶다.

   현재 SK-Telecom 의 T-Login 서비스에 IM-H100 을 통해 접속하려면, 서울과 수도권 위성도시 및 지방의 중소도시 이상 시가지와 전국 84개 읍면동사무소 주변에 있다면 가능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머지 지역과 해상이나 도서지역, 산간벽지에서도 위성이나 유선으로 연결되는 인터넷 대신 고속의 무선인터넷을 이동중에도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뿌듯해진다.

   언제나처럼, 꿈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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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8 16:30 2007/02/1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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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리얼텔레콤에서 시판중인 012 무선호출기 제품들(일부 지역호출기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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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 에지 스파이(광역)               [사진 2] 맥스텔 리얼콜(수도권)         [사진 3] 와이드T.C 메녹스(수도권)

   1인 1휴대폰 시대로 일컬어지는 현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 나를 포함하여 - 우리나라에도 분명 이동통신의 암흑기 내지는 과도기적인 단계가 존재했는데, 세일즈맨이나 긴급한 연락메세지를 신속하게 수신하고 그에 응신해야 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무선호출기 - 일명 삐삐 - 라 불리우는 기기를 허리에 차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지하에서는 잘 터지지 않는데다가 삐삐를 가진 사람들끼리 연락하려면 음성메세지를 녹음하고 그것을 청취하기 위해서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휴대폰의 보급으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 지금의 공중전화와는 사뭇 다른 모습인 셈이다.

   지역삐삐의 경우 필자는 광역삐삐가 생산 및 시판되기 이전에는 대구/경북권 사업자인 세림이동통신의 015 서비스를 사용하다가 1994년 7월경 텔슨전자의 최초 광역무선호출기인 왑스(WAPS)가 출시되면서 SK-Telecom의 012로 옮겨탄 전력을 가지고 있다. 이때 개통했던 왑스는 012-211-1715 라는 다소 생소한(?) 번호로 이후 약 3년간 뒤에 언급된 신세기통신의 017 셀룰러 폰을 구매하기 이전까지 외출시 꼭 챙겨야 할 필수품 제1호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광역무선호출기 또한 맹점이 있었으니 지역을 이동하게 되면 해당 지역으로 무선호출기의 서비스 지역 선택내역을 맞추어 주고, 전화를 통해 서비스권역을 등록해 주어야만 제대로 수신이 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어, 대구에서 서울로 기차를 타고 이동한다고 가정하면 대구에서 왜관, 김천을 지나 영동역으로 들어갈 무렵에 충북권역으로 1회, 다시 영동에서 대전으로 들어갈 무렵 충남권역으로 1회, 대전에서 조치원, 천안을 거쳐 오산으로 들어갈 무렵 서울/수도권으로 1회 등 무려 3회의 서비스 권역 설정을 맞추어야 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기차 안에 타고 있으면서 전화를 걸어서 이동통신 서비스 권역을 변경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고, 그렇다고 서비스 지역이 변경되는 역에 열차가 정차할 때마다 플랫폼에 뛰어내려가서 짧게는 30초 길게는 1분인 정차시간내에 공중전화를 걸어 서비스지역을 바꾸고 다시 열차에 탄다는 것 또한 환장할 노릇이다. -_-b

   그래서, 부득이하게 대구에서 서울을 갈 때는 김천 인근 추풍령 정도까지는 대구/경북권 서비스를 받아서 제대로 호출기가 터지고 황간을 지나 영동으로 진입할 무렵부터 서울에 도착해 전화를 걸기 전까지는 광역호출기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먹통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또는 머리가 좀 돌아가는 人이라면, 아예 대구에서 전화를 걸어 서울/경기로 서비스권역을 미리 변경해두고 열차에 승차하는 방법을 쓰기도 했었다.

   이러한 무선호출기의 단방향성을 극복하고자 지금의 셀룰러 폰이나 PCS 이전에 "씨티폰"이라는 기기가 잠시 - 아주 잠깐이었다 - 인기 상한가를 구가하며 등장했던 때가 있었는데, 한국통신(지금의 KT) 공중전화 박스에 씨티폰 전파를 중계하는 장치를 장착하고 박스에서 반경 100미터 이내에 위치한 곳에서는 어디든지 발신이 가능한 그야말로 발신 전용의 획기적인 상품으로 떠올랐다. - 말 그대로 획기적일 뿐이었지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한 것은 아니었다 -

   씨티폰은 일종의 젠더 역할을 하는 케이블을 이용하면 노트북에 연결해 마치 집에서 PC통신을 하듯이 하이텔이나 천리안 등의 서비스에 접속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이동성과 휴대성을 겸비한 통신수단이었지만, 전파의 도달거리가 공중전화 박스 인근으로 한정되고 통화자와 공중전화 박스의 중계장비 사이에 대형버스 한 대만 지나가도 통화가 단절되는 극악(?)의 안정성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기도 했던 애물단지같은 존재였다. 더구나 수신이 되지 않는다는 "발신전용"의 낙인은 그 외면의 정도를 더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았다.

   실례로, 모 학교 노천극장에서 씨티폰과 구형 노트북을 이용해 하이텔에 접속해서 서비스를 사용하던 중에 공중전화 박스와 나 사이에 차량이 수시로 지나다니자 계속 화면에 노이즈가 끼거나 접속이 단절되는 등의 현상으로 인해 엄청난 짜증을 유발하는 것을 확인했던 적도 있다.


   인터넷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1999년 4월 9일자 자료

   한국통신의 씨티폰 사업 퇴출에 대한 우리의 입장
   먹통 씨티폰, 퇴출이 끝 아니다 / 정책실패·사업실패 책임규명, 소비자피해 보상 있어야
 
   한국통신이 불량 통화품질로 소비자들의 원성을 받아오던 씨티폰 사업을 퇴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중앙일보 4월 8일자 1면). 씨티폰 사업은 그 시작부터 이미 실패가 예정된 사업이었다. 지난 97년 7월 서비스를 시작한 시기는 이미 휴대폰 서비스가 대중화 단계에 있었으며, 개인휴대통신(PCS)이 서비스 공급을 목전에 둔 상태였다. 따라서 기지국반경 100m 이내의 발신전용 이동통신인 씨티폰 사업은 타 통신서비스에 비해 품질은 물론 가격면에서도(초기 시티폰 기본요금 7500원)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밀한 수요예측과 시장전망 없이 사업을 결정함에 따라 수천억원에 달하는 투자손실만 남긴채 사업포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같은 과정은 통신정책의 명백한 실패이다. 씨티폰 사업 퇴출에 앞서 정부는 이같은 정책실패의 원인과 책임을 보다 분명히 가려야 할 것이다.

   그간 씨티폰 통화불량으로 인해 많은 소비자들이 기본료등 금전적 피해와 정신적 고통을 당하였다. 그러나, 사업자인 한국통신측은 이같은 소비자들의 피해와 기본료 환불요구를 일관되게 외면해 왔다. 이처럼 소비자 피해에 대해 아무런 보상대책도 없고 현 이용자에 대한 뚜렷한 사후대책도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퇴출을 선언하는 한국통신의 태도는 공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몰각한 비윤리적 처사이며, 통신독점사업자의 부당한 횡포에 다름아닌 것이다.

   우리는 한국통신측에 다시한 번 씨티폰 통화불량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기본료반환을 포함한 소비자 피해에 대한 보상대책을 조속히 수립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퇴출에 따른 현 씨티폰 이용자들에 대한 명확한 대책의 수립도 따라야 할 것이다.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는 이후 정보통신부와 국회, 감사원등 제반 관계기관에 질의, 진정, 감사청구등을 통해 씨티폰 사업실패의 책임을 가리고 소비자 피해에 대한 보상을 촉구하는 활동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


   1997년, 새로이 등장한 PCS 에 의해 무선호출기 시장이 몰락하며 SK-Telecom 의 012 나 지방권역 무선호출사업자의 015 서비스가 역사속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2001년 SK-Telecom 의 전국망 무선호출사업권을 인수한 리얼텔레콤에서 유일하게 지역단위 및 광역단위 무선호출서비스와 문자수신서비스를 제공중에 있으며, 앞으로도 무선호출 기지국이 남아 있는 한은 서비스가 지속될 전망이다.

   2006년 정보통신부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42,000여명의 무선호출 서비스 가입자가 존재하며 이 중 대다수는 증권정보 서비스를 제공받는 이용자들이지만, 1만여명의 "진짜" 삐삐사용자들이 아직 유료로 한 달 8,000원에서 1만원이 조금 넘는 대가를 지불하고 무선호출 서비스를 애용하고 있다. 의사들이나 긴급한 연락을 요하는 직종 종사자에 국한되는 현상이지만 말이다.

   2007년 2월 현재 광역 및 지역별 무선호출기 구매와 가입은 디아이티에서 운영하는 사이트 "I love beep" 에서 가능하며, Daum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삐삐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결성되어 변치 않는 무선호출기 사랑을 과시하고 있다.

    시도 때도 울려대는 휴대전화를 뒤로 하고 선택한 사람에게 원하는 시간대에 연락을 취할 수 있는 것을 1차 목표로, 삐삐나 휴대폰 같은 개인 휴대형 이동통신 기기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궁극의 경지(?)를 점령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딛어 보는 것도 괜찮은 행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요즘처럼 사무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울려대는 휴대폰이나 MFC 전화기의 벨 소리에 진한 노이로제를 느끼는 시기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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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7 02:45 2007/02/17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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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을 에일 듯한 추위가 온몸을 엄습하는 겨울날 새벽, 서울가는 첫 열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에 서 있었던 기억은 비단 나 혼자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를 종단하는 제2의 철도인 경부선이 지나가는 축복받은(?) 땅에서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자랐던 나는 더더욱 그런 기억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서울과 부산 사이의 경부선과 영주로 향하는 경북선이 분기하는 곳, 경북 김천시.

   1948년에 포항, 수원과 함께 시로 승격되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살고 있는 사람의 머릿수를 헤아려 보면 그다지 변화가 없는 전형적인 소비도시이다. 이러한 연유에서 2개의 철도 노선이 서로 교차하는 - 비록 그 중 한 개 노선은 단선이었지만 - 장점을 부각시킬 수 없어 새마을호 열차도 거의 정차하지 않던 곳.

   지금은 폐선되어 '철로자전거'라는 관광아이템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문경 가은읍 일대에서 생산되는 무연탄을 수송하던 산업철도의 연장선상에 아련한 흔적만이 남아 있는 그곳이 바로 나의 유년기 16년을 보낸 곳이었기에, 거대한 동물의 시체같은 서울에서 한 주를 보내고 주말이면 내려가야 하는 곳 또한 다를 바 없었다.

   지금처럼 주 5일제 근무가 정착되지 않은 1990년대 후반, 내가 다녔던 회사 또한 토요일에도 규정된 근무시간을 채워야 했었고 IMF 를 전후하여 어려운 사정 덕분에 토요일도 오후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토요일 저녁시간 즈음에 지친 몸을 이끌고 간단히 짐을 챙겨 집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227.6Km 에 달하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거나, 아니면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영등포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방법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간혹, 대전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서 다시 기차로 환승하는 두 가지가 믹스된 루트를 택해서 가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 내가 선택한 교통수단은 고속버스였다.

   토요일 퇴근시간이 일정치 않아 기차표를 예매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고, 혹 운이 좋아 즉석에서 표를 구한다고 하더라도 피곤에 절은 몸으로 깊은 잠에 빠지면 내려야 할 곳에서 못 내려 지나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노파심에 편안하게 잠을 청할 수 있는 고속버스를 택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것에도 걸림돌이 있었다. 워낙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던 데다가 중소도시였기 때문에 서울과의 사이에 유동인구가 그다지 많지가 않아서 버스의 배차간격이 1시간 30분 정도로 길고, 막차도 18시 20분에 일찍 끊어지는 등 조금만 늦게 일이 끝나도 집에 바로 갈 수 있는 직통노선은 탈 수가 없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택한 방법이 아예 23시경에 출발하는 대구행 심야우등 버스표를 이지티켓에서 인터넷을 통해 예약해 두었다가 - 지금은 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이지티켓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 일이 조금 일찍 끝나면 기다려서 타는 방법으로 동대구 한진터미널에 새벽 3시경에 도착하면 조금 걸어서 동대구역까지 간 다음, 04시 15분에 출발하는 서울행 첫 통일호를 이용해 김천까지 이동하는 것이었는데, 여기에도 문제는 있었다.

   바로 동대구에 조금 일찍 도착하거나 하면 열차 출발시각과 거의 1시간 반에서 2시간 가량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뚜렷한 우리나라의 사계 중 봄, 여름, 가을까지는 별로 지장이 없는데 반해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한겨울에는 고속터미널에서 동대구역까지 걸어가는 일조차 고역이었을 뿐더러 - 4시간 동안을 내리 자다가 일어난 직후에는 - 동대구역에 가서도 마땅히 시간을 보낼 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조금 시간이 많이 남는 날에는 역사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게 되었고, 고속터미널에서 걸어오는 방향의 역사 바깥쪽에 냄비우동과 어묵, 즉석햄버거 등을 팔던 가게가 있어 우연히 한 번 들렀다가 그곳의 냄비우동 맛에 반한 뒤로는 이 냄비우동을 먹기 위해서 일부러 시간 맞춰 심야우등을 타는 볼썽사나운(?) 광경을 연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닳고 닳아서 새까맣게 탄 흔적마저 배어 있는 양은 냄비에 약 1분간 끓여서 집게로 집어 쟁반에 올려주는 냄비우동과 단무지 맛이 가져다 주는 오묘한 조화와 함께 우동면발과 곁들여진 야채 토핑들 사이로 꼭꼭 숨어 있거나 아예 위에 올라타 있는 조그마한 계란 토핑을 찾아내 '터뜨려 먹을지 흰자위만 풀어서 먹고 노른자위는 반숙을 만들어 먹을지' 등을 고민하는 따위가 시간을 보내기엔 아주 그럴싸했다. - 적어도 범인(凡人)들이 하지 않는 행동과 생각을 일삼는 나의 대뇌피질 구조하에서는 말이다 -

   우동을 다 먹고 난 뒤에도 손님이 많지 않으면 훈훈한 온기를 맞으며 따뜻한 곳에서 열차를 기다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 실상은 새벽열차를 타러 오는 승객들 중 아침을 못먹은 사람들이 많기 떄문에 겨울에는 거의 빨리 먹고 비켜줘야 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 신문도 보고 여하지간 앉아서 남은 시간을 떄울 수 있는 좋은 장소를 제공했기 때문에 둘도 없는 아이템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통일호 객차가 사라지고, 무궁화호로 승격되면서 열차 출발시간이 뒤로 조정되어 04:30분에 출발하는 것으로 바뀐 뒤에도 한동안 이 냄비우동을 애용했었지만 1999년에 오너 드라이버가 되면서부터는 내 머리속 기억의 강 저편에 자리잡은 이 훌륭한 아이템은 잊혀지는 듯 했다.

   얼마의 시간이 더 흐르자 민자유치로 지어진 복합역사가 들어서고 각지의 역들이 화려하게 탈바꿈하면서는 레시피 같지 않은 레시피와 포장된 상태의 면발을 앞세운 천편일률적인 '홍익회 플랫폼 우동'의 가공할만한 물량공세 앞에 냄비우동집은 일순간 사라져 버렸고, 옛날 생각이 나서 가게가 있던 곳을 찾았을 때에는 이미 동대구역도 민자유치로 지어진 신역사가 커다란 아가리를 벌린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얼마전 인터넷 검색을 하다 우연찮은 기회에 동대구역 냄비우동에 대한 찬반양론(?) 내지는 갑론을박(?)이 오고가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고, 거기에서 얻을 수 있었던 정보는 '동대구 신역사 안 롯데리아 옆에 냄비우동을 파는 가게가 있다'라는 얘기였는데 '맛있다'와 '그냥 우동이네'라는 두 가지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것을 보고 역시 음식 맛은 다분히 '먹는 자의 주관적인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동대구역에서 추운 겨울날 새벽 냄비우동을 즐겨 먹곤 했었던 것을 추억하며 그리워하는 이유 또한 다름아닌 냄비우동의 '맛있는 맛' 때문이 아니라 양은냄비에 담겨져 나오는 냄비우동을 후후 불어가며 먹던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이니까 말이다.

   아직 동대구역 신역사 내에 존재한다는 냄비우동 가게를 찾아가 보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서울 가는 길이나 내려오는 길에 한 번쯤 꼭 들러서 다시 먹어볼 생각이다. 이상야릇한 옛날 생각을 더듬더듬 머릿속 어느 구석에선가 끄집어 내어 곱씹으면서…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몇 번 동대구역에 가거나 올 일이 있었지만 그냥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양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팽창해버린 역 건물의 화려함 이면에 감춰진 옛날의 그 정서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내가 나이를 먹고 둔감해진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서글퍼진다.

   냄비우동 한 그릇에 60분 남짓한 시간을 투자하며 즐길 수 있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너무 아둥바둥 입에 풀칠하는데 바빠서 내 앞에 주어진 자그마한 행복을 즐길만한 여유조차도 사라져버린 현실에 목놓아 마음으로 통곡해 본다.

   기억의 상실은 결국 기억의 저장과 동시에 진행된다고 보는 것도 무리는 없을 듯 싶다.

   단지, 그 정도에 대한 개인적인 편차만이 존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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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마살에 방랑벽까지 겹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국을 혼자서 유람하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연 7%에 달하는 물가인상률 덕분에 대중교통 운임도 옛날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신흥 교통수단도 많이 등장하게 되었다.

   지난 금요일부터 2박 3일간 휴가를 다녀오면서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 서울과 대구를 오갈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 중에서 가장 저렴한 것을 이용했는데,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지금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일반고속"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1] 2월 휴가때 승차했던 삼화고속 일반승차권

    
     ※ 서울 ↔ 대구간 대중교통 운임요금표(2007년 2월 12일 현재 기준)
         ○ 일반고속/우등고속/심야우등고속(서울강남-대구): 14,600원 / 21,600원 / 23,800원
         ○ 일반고속/우등고속/심야우등고속(동서울-대구) : 14,800원 / 21,800원 / 24,000원
         ○ 무궁화호/새마을호/KTX(동대구-서울) : 20,000원 / 29,400원 / 38,600원
         ○ 시외버스는 고속버스와 운행구간 중복으로 미운행


   상기 표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가장 비싼 KTX 와 가장 저렴한 일반고속의 운임 차이는 무려 24,000원이다.

   10여년 전 우등고속버스가 새로이 도입되면서 1일 몇 대 꼴로 운행대수가 줄어든 일반고속버스는 앉았을 때 무릎이 닿는 불편함과, 시트를 뒷쪽으로 젖혔을 때 허리의 곡선과 일치하지 않는 불편함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우등고속과 비교가 되면서 사람들이 외면하는 듯 했으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나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지갑이 얇아진 마니아 층(?)을 중심으로 주가를 한층 높여갔다.

   CRDi 라든가 터보인터쿨러 같은 신기술이 접목되지 않은 옛날 순정 8기통 또는 12기통, 16기통의 디젤 엔진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일반고속과 우등고속은 편의성의 차이 외에도 소요시간의 차이라는 단점을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 말 한 마리가 45Kg 의 짐을 짊어지고 30Km 를 가는데 걸리는 시간과 27Kg 의 짐을 짊어지고 같은 거리를 가는데 걸리는 최단시간은 분명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이치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 일반고속의 승차정원은 45석, 우등고속의 승차정원은 27석이다 -

   대우자동차에서 생산하는 로얄 크루져 같은 신차들이 등장하면서는 좌석의 배열도 신체구조를 감안하여 어느 정도의 공간을 확보하면서 차체가 커지게 되었고, 고속국도의 선형개량공사가 많이 완료됨과 동시에 중부내륙선과 같은 고속국도들이 신설되면서, 오늘 탔던 버스처럼 속도제한장치가 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3시간 8분만에 서대구 터미널에 나를 내려주는 기염을 토하는 일도 이제는 일상 다반사가 되어버렸는데…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 서울에서 대구로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약 3시간 45분이었다.

   속도제한장치가 고장났는지 일부러 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유야 어찌되었건 120Km/h 이상으로 칼질을 하면서 달리는 심야우등고속을 운이 좋아 타지 않는 이상에는 절대 3시간 30분만에 오는 것은 불가능했었고, 반포에서 궁내동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구간이 조금이라도 막히는 날에는 어김없이 4시간을 찍곤 했던 길이었는데 이제는 평균이 3시간 10분이 되어버렸으니 엄청난 단축이 아닌가?

   그렇지만, 점점 짧아지는 소요시간은 차치하고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에드몬슨식 승차권을 수기 개표기로 '딸깍'하고 끊어내며 탔던 비둘기호 열차처럼 일반고속도 나중에는 속도경쟁과 시간 경쟁에서 밀려 결국 자취를 감추는 전철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많은 것들이 주변에서 사라지고, 그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일들이 되풀이되고 있다. 시내 곳곳에 뚫린 도로교통망이 그렇고, 자고 일어나면 바뀌고 무언가 새로 개발되는 IT 분야의 여러 벤더들이 쏟아내는 아이템들이 그럴 것이다.

   일상속에서 매일 그것을 접하고 사는 사람들은 조그마한 변화를 잘 감지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짧게는 한 달에 한 번 길게는 몇 달에 한 번씩 장거리를 여행하다 보면 특히 도심에서 일어나는 건물의 변화라든가 이런 대중교통수단의 변모는 알 듯 모를 듯한 여운과 함께 무언가 카타르시스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이런 기록들을 시간의 흐름과 발맞추어 잘 정리해 놓는다면, 분명 후세에는 재미난 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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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드 | 2007/02/12 15:03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한동안 일을 하다가 지금 잠시 쉬는 중인데, 여행을 갈까 말까 고민중이거든요.
이 포스트를보니 왠지 당장 어디론가 떠나고 싶습니다.^^;
Laysys | 2007/02/13 00:38 | PERMALINK | EDIT/DEL
가끔 심장이 머리에서 뛰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할 때가 있죠.
머릿속을 충동질하는 심장을 지니고 있다는 건 아직 젊다는 반증이 아닌가 합니다.
가까운데라도 훌쩍 떠나서 바람 한 번 쐬고 오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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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호환기종의 ISA 슬롯에 장착되던 내장형 팩스모뎀
  [사진 1] IBM 호환 기종 PC의 ISA 슬롯에 장착되던 내장형 팩스 겸용 모뎀


   "오는 2월 28일이면, 그간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KT(옛 한국통신공사)의 하이텔(HiTEL) VT 터미널 서비스가 긴 겨울잠을 뒤로 한 채 역사속의 뒤안길로 사라질 예정"이다. 현재 남아 있는 천리안이나 나우누리 같은 여타의 VT 터미널 기반 서비스들도 결국은 하이텔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임은 마치 역사적인 사명이요 운명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서울지하철 4호선 하행선이 안산, 오이도까지 연장되면서 - 지금은 폐선되어 흉물스러운 철로의 흔적만 남아버린 - 수원에서 인천 소래포구 사이를 오가며 삶의 애환을 실어나르던 수인선 협궤열차의 조금 더 오래된 이야기가 갑자기 떠오르며, 그와 동시에 가슴 한 구석이 찡해옴을 느낀다.

   사라져버린 것들이 갖는 허전함과 아쉬움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고속철 KTX가 가져다 주는 고속 이동의 이점과 2시간 생활권이라는 캐치 프레이즈"에 대비되는, "도시 통근형 통일호의 전신인 비둘기호 열차가 주는 느긋한 시골 풍경의 여유"가 그렇고, "현세의 초고속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환경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느끼는 편리함과 신속함"에 대비되는 저 옛날 PC 통신 환경의 "책임감이 수반되는 인간미에 대한 향수"가 그럴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1991년 10월 2일, MBC 9시 뉴스데스크 시작을 알리는 삼성 돌체 시계의 우렁찬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나는 현대전자의 내장형 2400bps MNP Class 5 모뎀을 구입해 당시 사용하던 - 역시 현대전자의 제품인 - Super 16S XT PC의 슬롯에 장착하고 역사적인 첫 다이얼업(Dial-up) 모뎀을 통한 온라인 담금질을 시작했었다.

   당시 내장형 2400BPS 모뎀의 가격은 18만원대였는데, 에러 보정기능과 압축 기능이 있는 MNP Class 5 옵션, 그리고 1200bps 모뎀과 비교했을 때 2배의 전송속도는 그 정도의 비용을 지불할 만큼 정당하다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했었다.

   Super 16S - 이하 16S - 는 10MHz 클럭의 인텔의 8086 계열 CPU와 근원을 알 수 없는 ISA 허큘리스 그래픽 보드가 장착되어 있었고, 64KB 메모리칩 8개 또는 32KB 메모리칩 12개로 이루어진 512KB의 메인메모리에 하드디스크도 없이 5.25인치 360KB 2D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만 2개가 덩그러니 전면의 Drive Bay 에 고정되어 있는, 지금 생각하면 도무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그런 시스템이다.

   파란색의 플라스틱 재질 전원 버튼을 누르면, 메인보드와 연결된 점퍼에서 단락을 일으켜 180W 용량의 파워 서플라이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팬을 가동시키면서 16S가 잠에서 깨어난다.

   집에 16S를 두고 있으면서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봤자 CTRL + 엔터키의 조합으로 CPU 의 터보 ON/OFF 토글 기능을 왔다갔다하며 2.77MHz 와 10MHz 의 차이를 몸소 체험해 보는 것과, 겨우 열 개 남짓한 바이러스를 검색하고 치료할 수 있는 - 몽키 바이러스나 브레인 바이러스, 다마네기 바이러스, 예루살렘 바이러스 등 - 안철수님의 V2 PLUS 라는 백신 프로그램을 이용해 시내 모처의 컴퓨터 판매점에서 복사해 온 게임 디스켓의 바이러스를 검사하는 따위의 단조로운 일들 뿐이었다.

   그런 시스템에 모뎀을 장착하면서부터는 오프라인 환경에서 우물 안 개구리와 같았던 컴퓨팅 환경이 전화선을 통해 전국 각지에 있는 사람들과 연계되는 온라인 환경으로 변모하면서 무수히 많은 부분이 변화하고 발전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디오텍스(Videotex) 기반의 데이콤의 천리안 II - 지금의 천리안, 97년 이전 한국데이터통신(주)의 PC-Serve 서비스가 전신이다 - 라든가 대우증권 Dial-VAN 같은 증권정보 서비스,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서비스하던 KETEL 서비스 - 지금의 HiTEL 서비스의 전신이다. 한경 KETEL 을 KT에서 인수하면서 유료화로 정책이 변경되었다. - 그리고 전국 각지에 산재한 개인 사용자들의 사설 BBS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서비스들이 모뎀과 전화선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는 '빨리빨리'와 같은 한국인들의 급한 성격을 자극해 지금의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 세계 1위의 제국에 이르는 초석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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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2] 옛 PC-Serve 시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천리안의 대화오락실에 <이야기 멀티>로 접속한 모습

   그도 그럴만한 것이 2400bps 라는 속도가 가져다 주는 한계 - 이후 몇년사이 14400bps 나 28800bps, 33600bps, 더 나아가서는 디지털 전용회선에 맞먹는 56Kbps급 모뎀이 출시되고 널리 보급되었지만 - 는 실로 엄청난 것이어서 1MB 짜리 파일을 다운받기 위해서는 약 1시간 가량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 1MB = 1,024KBytes = 1,048,576Bytes
    ※ 2400bps = 2400 baud per second 또는 2400 bit per second 로 초당 전송률을 나타냄
    ※ 1Byte = 8Bit 이므로, 2400bps 모뎀은 이론적으로 초당 300Bytes를 전송
    ※ 1,048,576Bytes 를 300Bytes로 나누면 3,495초가 되는데 이는 분으로 따지면 약 58분이다.

  
   이렇듯 열악한 환경에서 비싼 전화요금과 상용서비스의 경우 분당 이용료까지 부담을 해가며 살인적인 금전투자를 서슴지 않고 계속하면서 PC통신에 몰입할 수 있었던 보이지 않는 저력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일까?

   실제 사례를 들어 한번 살펴보면, 서울이나 대구 같은 대도시에는 일찍부터 시내전화요금에 "시분제"라는 것이 도입되어 실제 사용하는 통화량만큼 종량제로 과금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내가 살았던 인구 10만도 안되는 지방의 작은 중소도시에서는 3분에 20원 - 한때는 공중전화에서도 십원짜리 두 개면 넉넉하게 할 말 다 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어렴풋이 기억은 난다 - 이면 끊을 때까지 계속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하루에 한 시간씩 PC-Serve 에 접속해서 채팅이건 동호회 활동이건 여러 가지 유희(?)를 즐긴다고 했을 때, 일단 전화요금은 3분에 20원씩, 하루에 400원, 한 달이면 30일 기준으로 12,000원이 부과된다. 그리고, 지금의 LG데이콤의 전신인 한국데이터통신(주)에서 서비스하던 PC-Serve 의 초창기 이용료는 1분에 25원으로 한시간이면 1,500원 한 달에 30일 기준 45,000원이 부과되었다. 부가가치세 10%를 포함하면 시내전화요금 13,200원 + 통신서비스 이용료 49,500원 해서 합계 52,700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해야만 했던 셈이다.

   다행히 PC-Serve 에는 기본료가 부가세 포함해서 사용하지 않아도 11,000원씩 부과가 되었고 이 기본료로는 한 달에 20시간의 사용시간이 기본적으로 제공되었다. 20시간이 많아 보이지만, 채팅하고 이것저것 동호회 둘러보고 자료실 조금 이용하면 하루 2-3시간은 기본적으로 간다. 지금도 "USE" 라는 명령어를 사용해서 매번 사용시간을 체크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중에 시내전화요금이 단계적으로 인상되면서 3분에 35원, 3분에 40원 식으로 계속 올라가면서 바로잡아졌지만 초기에는 전화요금보다 서비스 이용료가 더 큰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이 벌어졌던 셈이다.

   1992년 2월, PC-Serve 에 바둑동호회를 개설해서 초대 대표시삽을 하는 동안에도, 소비자에게는 살인적이고 회사는 노다지를 캐는 수익구조로 인한 수난은 계속됐다. 이른바, 우수동호회를 선정해서 매월 발표하면서 그에 부합되는 혜택을 부여했는데 운영진에게는 ZS로 시작하는 무료 운영용 아이디를 제공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ZS 뒤에는 일반적으로 바로가기 명령에 해당되는 Go 명령의 뒤에 오는 파라미터와 같은 인덱스명이 따라붙었고, 아이디가 추가로 발급될 경우에는 숫자를 부여했다.

   바둑동호회의 경우 GO BADUCK 이라는 인덱스명을 사용했는데, 아이디의 최대 자리수가 8자리였기 때문에 ZSBADUK 이 대표시삽의 아이디였고, ZSBADUK1 이 부시삽1, 그 다음이 ZSBADUK2 식으로 사용시간이 한때 전체 동호회를 통틀어 3위 안에 드는 얼마 동안은 ZSBADUK4까지 총 5개의 무료 아이디를 발급받아 많은 혜택을 봤던 기억이 난다. 그에 수반되는 책임과 의무도 막중했지만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 3] 천리안의 텍스트 기반 사용자 정보 수정화면. 6번 항목의 <호출기>가 눈에 띈다.

   여담이지만, 충청지역동호회(GO CHUNG)라든가 지금은 인터넷상에서 앳(@)파일이라는 사이트로 변모한 아트미디어 동호회, 게임과 만화를 다뤘던 환상동호회 같은 곳들이 사용시간 기준으로 우수동호회에 자주 올랐던 곳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소는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비용을 부담하면서도 꿋꿋이 부모님이 잘라버린 검정 피복의 구리전화선을 창틀이나 장판, 벽지에 실리콘 총으로 발라버리는 투혼(?)을 발휘하면서까지 계속 PC 통신에 몰입할 수 있었던 저력의 원천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정신 그리고 기본적인 에티켓은 준수하며 서로에 대한 예의를 갖출 줄 알았던 책임감과 더불어 온라인상에서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유일한 식별자(Identifier)였던 자기 아이디에 대한 자부심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현재의 인터넷 환경처럼 가정교육을 파트타임으로 받은 쓰레기 같은 인종들이 난무하는 멀티태스킹의 바다가 아니라, 동호회나 클럽의 소위 '지하실'이라 불리우는 자그마한 채팅방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오로지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던, "멀티태스킹 서버 속 싱글태스크 모드"의 매력 또한 거기에 일조하지 않았을까?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지금은 타이핑만 빠르면 메신저로 양다리 아니라 대여섯 다리도 가능하지만, 그땐 그게 불가능했다. /A 명령어 한 방이면 누가 어디에 가서 무얼 하는지 다 알 수 있었고 - 결국 이것도 유닉스 쉘에 있는 finger 명령의 응용버젼이겠지만 - 채팅실에 입장해 있는 동안 다른데로 이동할 수가 없었다.
   
   온라인 매체에서 하이텔 VT 서비스의 중단 소식을 접하고 나서 참으로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마치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아주 오래된 벗 하나가 요단강 건너 북망산천으로 훨훨 날아가는 것처럼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옴은 비단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겨울은 몸도 마음도 추워야 하는데 올 겨울은 유난히도 따뜻한 날이 많은 것 같다.
  
   시간은 계속 흐른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흐를 것이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어야 할진대,
    문명의 이기가 가져다 준 과거 기억의 편린을,
    앨범 속 아주 오래된 한 장의 흑백사진처럼
    단지 가슴속에 묻기만 해야 하는 것인지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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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7 00:49 2007/02/07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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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희 | 2007/08/17 07:09 | PERMALINK | EDIT/DEL | REPLY
현대 슈퍼 16s XT컴퓨터.. 저도 그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죠. 날짜까지 기억나는군요. 구입했던 날이 1990년 3월 1일.. 삼일절.. 단지 다른거는 제 기억에 (저도 초등학교 당시 국민학교 4학년때라) 메모리가 640kb였었고,, (덕분에 드라큘라나 부르스 브라더스 라는 오락이 가능했다는 ㅎ) 터보 on/off 기능을 쓸때 평상시는 10MHz 에서 4.xx Mhz로 바뀌었는거 같네요. 그러다가 1995년 5월 16일 (중3때 우리 중학교 개교기념일) 되서 2400모뎀을 구해서 처음 설치하고 전화선 연결해서 ATDT01410으로 접속했던것이 떠오르는군요.
그러다가 전화비로 12만원이 청구되어 (당시 3분에 20원 하던 시절), 엄마한테 맞았던 기억까지 나는군요 훗

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그때는 채팅방에서 채팅을 해도 자유와 책임이 동시에 수반되던 시절이었으니..
지금 인터넷 하는 맛은 그때를 따라갈 수가 없나 봅니다.

님 게시물 보고 옛 생각이 떠올라서 들렀다 갑니다.
Laysys | 2007/08/19 04:16 | PERMALINK | EDIT/DEL
반갑습니다.
저 역시도 제가 살던 중소도시엔 없는 접속포트 때문에 시외접속을 주로 하다보니 언젠가 전화요금이 50만원이 넘게 청구되서 반 죽다 살아난 적이 있습니다. -_-b
돈도 더 적게 들고 더 빨라졌는데도 불구하고 옛날 생각하면 참 요즘은 재미없다는 게 공통적인 생각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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